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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그 섬에 가고 싶다`

기사입력 [2018-01-26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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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한국 영화의 도약기에 강수연, 최진실 등과 함께 스크린을 누볐던 여배우 심혜진은 모델 출신이었습니다. 170cm의 훤칠힌 키와 시원한 이목구비로 전화기, 자동차, 제화, 음료 등의 광고모델로 줏가를 날렸지요. 이중에서도 특히 경쟁 음료의 광고 모델을 번갈아 맡아 등장한 일은 광고계에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칠성사이다의 모델이었던 그녀가 계약기간 만료와 함께 그 다음에는 코카콜라의 모델로 TV에 모습을 나타낸 겁니다.

 

그런데 바로 이 코카콜라 CF가 시쳇말로 심혜진의 인생을 바꾸어놓았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TV에 등장하기 시작한 코카콜라의 CF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보기 어려웠던 여성 신장을 과감하게 표방하고 나왔습니다. 사무실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남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기 보다는 그저 사무실의 꽃정도로 인식돼던 시기에 코카콜라의 주인공 심혜진은 30초짜리 CF에서 파격적인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난 느껴요 코카 콜라라는 메인 카피를 앞세우며 심혜진은 남자 동료들과들과 밝은 표정으로 일하는 커리어 우먼으로 등장했습니다. 업무시간이든 여가시간이든 남자 동료들과 동등한, 아니 마치 리드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남자를 유혹하는 듯한 윙크를 날리는가 하면 남자 동료를 업어치기로 메다꽂기도 하고, 팔꿈치로 남자의 얼굴을 가격하는 듯한 제스처도 취했습니다.

 

파격이었습니다. 치마를 입은 채로 철봉을 하고, 치마를 입은 차림으로 축구공을 차는 모습은 그동안 여성들에게 묵시적으로 강요되던 조신함의 굴레와 억압을 시원하게 깨버리는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습니다. 요즘으로 얘기하면 걸크러시의 원조격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톡 쏘는 여성의 상큼한 이미지를 발산하는 심혜진을 그냥 둘 리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첫 영화 출연작 물의 나라’(1989, 유영진 감독)를 시작으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을 이끌던 뉴코리언시네마 감독들의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박광수 감독과는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 이어 그 섬에 가고 싶다’(1993)에서도 호흡을 맞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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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의 촬영은 전라남도 보길도에서 이루어졌는데, 늘 즐거웠던 촬영현장에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서로의 발 크기를 비교해보며 깔깔대고 있다. 

  

심혜진은 특히 그 섬에 가고 싶다에 출연하기 직전, 그야말로 인기 상종가를 치고 있었습니다. 바로 최민수와 함께 출연한 신세대 젊은이들의 결혼풍속도를 유쾌하게 그려낸 영화 결혼이야기’(1992, 김의석 감독)의 엄청난 흥행 결과 때문이었지요. 코카콜라의 이미지를 재현한 듯한 이 영화에서 심혜진은 남성관객뿐 아니라 여성관객들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남성들에게 단 한 발자욱도 물러서지 않는 신세대 여성의 아이콘이 된 것이었습니다.

 

한국 영화를 제작하는 수많은 영화사의 감독과 제작자들이 심혜진을 캐스팅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을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녀의 소속사 사무실 책상에는 미처 읽지 못한 시나리오가 수북히 쌓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출연요청작들 가운데 선택한 영화가 그 섬에 가고 싶다였습니다.

 

물론 박광수 감독과는 그들도 우리처럼을 즐겁게 작업했던 인연이 있었지요. 그리고 그 영화로 낭뜨 제3대륙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지요. 하지만 심혜진이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그들도 우리처럼의 영화작업을 통해 눈을 뜨게 됐던 새로운 영화에 대한 더 큰갈망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그 섬에 가고 싶다는 기획단계에서부터 적잖은 산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박광수 감독이 직접 제작사를 설립하고 첫 번째로 제작하는 영화였던 터라 제작비의 조달문제부터 시나리오 집필, 연출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작업을 챙겨야 했기 때문이지요. 이중에서도 임철우 작가의 동명 원작 소설을 각색하는 작업이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훗날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이 된, 당시에는 작가 이창동과 원작자인 임철우 작가까지 가세한 각색작업에만 꼬박 1년이 걸렸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순수했던 시절로 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 서정적인 영상으로 옮겨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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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혜진(왼쪽)은 바보처녀 옥님이 역을 능청스럽게 연기해냈다.

   

문재구(문성근)는 고향섬에 묻어달라는 아버지 문덕배의 유언에 따라 꽃상여를 배에 싣고 섬으로 향합니다. 친구이자 시인인 김철(안성기)의 예상대로 섬에 가까워지자 섬 사람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칩니다. 결국 배를 섬에 대지도 못한 채 김철 혼자 가까스로 섬에 오릅니다. 그리고는 김철의 회상으로 너무나 슬프고도 아름다웠던 네 여인의 추억과 그 해 여름날의 한 사건이 펼쳐집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던 해, 엄마가 없던 철은 동네 아낙들의 품에서 자라납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재구의 어머니 넙도댁(이용이)과 타고난 색기로 동네 남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벌떡녀(안소영), 그리고 남편에게 얻어맞고 살다가 무당이 된 업순네(아용녀), 그리고 어린 철에게 젖을 물려주며 꿈과 사랑을 알게 해준 바보 옥님이(심혜진) 등이 그들입니다.

 

그 평화롭던 마을에 어느날, 무장한 인민군이 들이닥치더니 초등학교 운동장에 섬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이게 합니다. 그리고는 국군에게 협조한 사람들을 고발하라며 인민재판을 엽니다. 순식간에 섬마을 사람들간에 엄청난 분란이 일어납니다. 국군에 협조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뉜 섬마을 사람들. 그러나 이 인민군들이 모두 국군임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국군에 협조했다고 하여 죽을 줄 알았던 사람들은 살아나고, 무고한 사람들이 처형당하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이 모든 농간이 문덕배의 짓이었음도 밝혀집니다.

 

눈 앞에서 가족을 잃은 한을 안고 살던 섬 사람들은 전쟁이 끝나자 문덕배를 죽이려고 찾습니다만 이미 문덕배는 섬을 빠져나간 뒤였습니다.

문덕배의 상여를 섬에 들어오지 못하게 한 이유가 이렇게 드러나면서 섬 사람들은 상여를 실은 배에 불을 지릅니다. 문재구와 김철은 불타는 상여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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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구(문성근)의 친구이자 시인인 김철 역의 안성기.

  

아버지의 시신을 묻기 위해 고향섬을 찾았으나 결국 아버지의 상여를 실은 배가 섬에 오르지 못한 채 바다에서 불태워지는 마지막 장면이 의미심장합니다. 박 감독은 이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분단의 아픔을 그리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박 감독은 영화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제목에서도 은 사람들간에 다가갈 수 없는 불통을, ‘가고 싶다는 역설적으로 소통을 꿈꾸는 것이라는 연출변을 밝히기도 했지요.

 

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비친 원조 애마부인안소영의 벌떡녀연기가 인상적이었으며, 문재구와 그의 아버지 문덕배의 12역으로 동분서주한 문성근의 활약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바보처녀 옥님이를 연기한 심혜진의 노고가 단연 빛났습니다.

옛날 시골마을에는 흔히 있었던 약간 모자란 바보 처녀옥님이에서는 코카 콜라의 상큼한 이미지는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심혜진은 영화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그 섬에 들어갔습니다. 원작 소설에서는 낙일도라는 이름의 가상의 섬이었습니다만 촬영현장은 전라남도 보길도였습니다. ‘그 섬의 바보처녀가 되기 위해서 그녀는 일찌감치 짐을 싸고 들어간 겁니다. 캐릭터에의 몰입이었지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은 많지 않았지만 옥님이의 행동으로 영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심혜진의 심적 부담도 만만찮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늘 옥님이의 의상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러날 동안 섬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어느덧 옥님이로 바뀌었습니다.

 

심혜진의 촬영분이 시작되기 바로 전날 밤의 일입니다. 박 감독과 제작스태프들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그날의 촬영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귀가하던 중, 섬 마을 들판에 홀로 서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그녀를 먼 발치에서 보게 됐습니다.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녀를 향해 영락없는 옥님이라고 입을 모았지요. 그래선지 심혜진도 자신의 필모그라피 중에서도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으뜸으로 꼽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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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 싶다'의 촬연현장은 늘 즐거웠다. 촹영 없는 날,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한  배우들. 왼쪽부터 문성근, 심혜진, 안성기.(사진 아래 분홍색 저고리는 안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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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없는 날, 보길도 해안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배우들. 왼쪽부터 안소영, 심혜진, 문성근, 의자에 앉은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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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스크린에 모습을 나타낸 '원조 애마부인' 안소영은 '벌떡녀'의 캐릭터를 감칠맛나게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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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앞두고 박광수 감독(오른쪽)과 옥님이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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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필름을 설립하고 첫 번째 작품으로 '그 섬에 가고 싶다'를 제작 연출하는 박광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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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상 촬영중인 촬영팀. 빨간 메가폰을 든 유영길 촬영감독의 옆에 박광수 감독이 촬영팀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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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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