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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장미의 나날`

기사입력 [2017-11-1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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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스릴러라는 장르의 영화가 과거에 한국에서는 그다지 많이 제작되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철이면 납량용으로 공포 영화들이 극장가에 선보이거나 서스펜스(긴장감) 넘치는 미스테리 터치의 스릴러 영화들은 그래도 꽤 제작되었습니다만 이른바 에로틱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에로틱 스릴러영화는 별로 없었습니다. 이는 아마도 뿌리 깊은 유교문화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남녀간의 애정행위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베겟머리 송사정도로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이러한 모습들을 아무리 예술적으로 표현했다고 해도, 극장이라는 공공의 장소에서 중인환시(衆人環視)한다는 게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장미의 나날’(1994, 곽지균 감독)은 이러한 한국적 문화의 배경을 감안하면 꽤 용감한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미의 나날이전의 한국 영화사에서 에로틱 스릴러 영화를 꼽으라면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4)화녀’(1971), 김지미 주연의 불나비’(1965, 조해진 감독), 그리고 둘 다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던 자매 고() 오수미 윤영실 주연의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3, 정지영 감독)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 영화는 모두 높은 완성도와 상업적인 재미까지 두루 갖춘 작품들로 평가받았습니다만 이상하게도 흥행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것 역시 알게 모르게 유교적인 문화 지배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관객들의 성향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장미의 나날은 영화제작 발표때부터 한국에도 수입개봉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할리우드영화 원초적 본능’(1992, 폴 버호벤 감독)과 같은 에로틱 스릴러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다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편당 1억원의 출연료를 받으며 최고의 줏가를 올리고 있던 강수연과 뇌쇄적인 섹시미로 스크린을 달구었던 이보희를 투 톱으로 내세웠음을 영화 마케팅의 최우선 포인트로 삼았습니다. 특히 이보희는 아메리카 아메리카’(1988, 장길수 감독)의 미국 촬영 도중 만난 미국 교포와의 결혼 이후, 5년만에 스크린으로 컴백하는 것이어서 대중의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보희는 이장호 감독과 함께 호흡을 맟춰 찍은 무릎과 무릎사이’(1984)어우동’(1985), 과부춤’(1983) 등의 영화를 통해 에로티시즘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혼과 함께 스크린을 떠났다가 5년만에 돌아온다는 소식에, 특히 남성팬들의 반가움이 컸습니다.

 

남자 주인공에도 하얀전쟁’(1992, 정지영 감독)그여자 그남자‘(1993, 김의석 감독)를 통해서 스타덤에 오른 이경영,  그리고 당시 방송가의 신성으로 떠오르고 있던 고()변영훈까지 캐스팅 라인업을 꾸렸습니다. 감독 또한 겨울나그네‘(1986'그후로도 오랫동안(1989년) '젊은 날의 초상‘(1990등의 영화를 통해 섬세한 감성 연출로 찬사를 받던 고()곽지균 감독이었으니, 말그대로 호화진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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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나날'에서 팜므파탈의 변신을 보여주는 재희(강수연,왼쪽에서 두번째)와 동규(김병세, 오른쪽)의 비밀 결혼식 장면. 촬영에 앞서 연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곽지균 감독(왼쪽)과 지현 역의 이보희(오른쪽에서 두번째)

 

그런데 장미의 나날의 영화제작 일정은 순조롭게 진행되다가 예상치 못한 돌발 변수를 만났습니다. 네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변영훈이 영화 남자 위의 여자’(1993)의 촬영 도중 헬기사고로 사망한 겁니다. ‘남자 위의 여자의 촬영을 마치고 장미의 나날에 합류할 예정이었던 그의 사고로 장미의 나날의 제작팀은 거의 1년 가까이 촬영을 미뤄야 했습니다. 그 사이에 변영훈 대신 김병세를 캐스팅했습니다. 주연배우의 유고(有故)가 있었음에도 장미의 나날은 제작팀을 재정비해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영화 한 편의 평균 제작비가 5억여원 정도였는데, ‘장미의 나날은 이같은 촬영 연기에 따른 비용에다 호주 로케이션 촬영까지 감행하면서 10억원에 이르는 제작비를 과감하게 투입했습니다. 사실 이런 강행이 가능할 수 있었던 데는, ‘장미의 나날의 제작사(동아수출공사)가 할리우드영화 클리프 행어’(1993, 레니 할린 감독)의 한국수입 개봉에서 흥행대박(120만명 관객동원)을 터뜨렸기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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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정략 결혼을 하게 되는 지현(이보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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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정략 결혼을 하게 되는 지현(이보희)와 동규(김병세)의 결혼식 장면 촬영.

  

네 남녀의 인물구도를 토대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애인 명호(이경영)를 두고 동규(김병세)와 정략적으로 결혼하게 된 지현(이보희). 하지만 동규는 아내의 이같은 결혼 배경에 대해 열등감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 열등감이 아내를 향한 학대로 이어집니다. 동규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지현은 옛 애인이자 동규의 부하직원인 명호를 찾아가 하소연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에서 미모의 재력가 재희(강수연)가 동규 앞에 나타납니다. 재희에게 반한 동규는 아내를 버리고 재희와의 해외이민을 계획합니다. 회사도 정리하고 재산도 하나둘씩 정리합니다. 그리고 재희와 비밀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합니다.

 

한편 지현은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동규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씁니다. 이에 동규는 아내가 스스로 가정을 포기할 수 있도록 음모를 꾸밉니다. 비바람치는 날 밤, 괴한에게 성폭행 당한 지현은 자살을 시도하지만 미수에 그칩니다. 지현은 유산을 했다면서 동규의 이혼 요청을 받아들이고 집을 떠납니다.

모든 게 자신의 뜻대로 이뤄지자 동규는 재희와 한국에서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냅니다. 그러나 이튿날 공항에 재희는 나타나지 않고 비행기표도 누군가에 의해 취소된 상태임을 알게 됩니다. 재희의 말을 듣고 호주에 머물고 있던 명호에게 시켜 찾아놓은 600만달라의 행방도 묘연합니다. 하루아침에 무일푼이 된 동규. 그러나 이 시간 호주 시드니에서는 지현과 명호가 결혼식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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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옛 애인 관계로 설정되어 있는 명호(이경영)와 지현(이보희).

 

영화는 나름 꽤 커다란 반전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나온 관객들도 지현 역의 이보희가 재희역의 강수연과 공모(?)하여 이뤄낸 마지막 반전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카드라는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강수연의 강렬한 팜므파탈 변신은 역시 강수연, 역시 월드스타!”라는 만족감을 안겨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영화를 가지고 논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지요. 해외촬영지인 호주 시드니의 풍광을 시원한 화면에서 마주하는 눈의 호사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습니다 또 영화의 중반 이후까지 관객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할 만큼 치밀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도 지루할 틈 없이 전개되는데, 영화의 결과는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7만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데 그쳤습니다. 영화의 결과를 흥행성적으로만 따지는 게 바람직한 방법은 아닙니다만 호화진용의 제작팀에 보통의 영화제작비에 두배 이상 쏟아부은 영화치고는 아쉬움이 많다고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어느 신문의 컬럼에 국내의 관객들에게는 아직 한국산 에로틱 스릴러를 대하는 게 불편한 모양이라는 식의 감상비평이 실렸습니다. 외국 배우들의 에로티시즘 연기였다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는 행간의 의미가 느껴지는 표현이었지요. 샤론 스톤의 다리 꼬는 장면은 섹시하다면서 봐주면서도 육감적인 자태로 김병세를 유혹하는 강수연의 끈적끈적한 베드신은 지나치다고 보는 건, 무슨 심리일까요?

 

하기는 장미의 나날에서는 에로틱 무드가 넘치는 베드신, 또는 수영장 장면들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줄잡아 열댓번은 되는 듯 싶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들 대부분 당시의 기준에서 보면 꽤 파격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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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의 부부, 동규 역의 김병세와 지현 역의 이보희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해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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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나날'에서 안정감 있는 연기를 펼쳐보였던 김병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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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위해 따로 모인 곽지균감독(왼쪽), 김병세(가운데), 이보희(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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