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

[스포츠산책] 마라톤과 역사의식

기사입력 [2019-04-08 08:55]

지난 일요일 매년 4월에 열리는 대구국제마라톤대회가 열렸다

2001년 마스터즈 3km 대회로 시작된 이 대회는 2009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인증 국제대회로 승격된 후 올해로 11회 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이후 4년만인 2013년 실버라벨 등급을 받은 이후 7년 연속 실버라벨 등급 대회로 펼쳐진 ‘2019 대구국제마라톤 대회에는 전 세계 18개국에서 47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또한 올해 마스터즈(10km) 종목 부문에는 전국 각지에서 15,740명의 마라톤 동호인들이 참가하면서 2009년 국제대회 승격 후 최대 규모로 개최됐다. 지난해 기준 전 세계 900여개 국제마라톤대회 중 IAAF 인증 라벨대회는 골드라벨 56, 실버라벨 26, 브론즈라벨 32개에 불과하여 대구국제마라톤대회의 권위를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마라톤은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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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마라톤 대회 참가자들의 모습.

  

BC 490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대왕이 보낸 그리스 원정군은 낙소스와 델로스섬 등을 정복한 후에 아테네를 공략하기 위해 아티카의 북동 해안에 있는 마라톤 광야에 상륙한다

전함 6백여 척에 10만여 명의 정예 군사를 이끌고 아테네를 향해 진격했고 마침내 마라톤 평원에 이르렀다. 수적으로 부족했던 아테네 장군들은 밀티아데스의 제안에 따라 마라톤(그리스 아테네 북동쪽 약 30떨어진 지역)에서 적을 맞아 싸울 작전을 세우고, 칼리마코스의 지휘에 따라 약 1만 보병군을 급파하여 마라톤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산기슭에 포진한다. 양군의 대치 상태가 수일간 계속 되던 어느 날 페르시아군은 주력부대를 승선시켜 해상으로부터 아테네를 직접 공격하려고 하였다. 기회를 보던 아테네군은 즉시 공격하여 페르시아군을 해안가 습지로 몰아넣으며 습지에 빠뜨려 크게 무찔렀다. 페르시아군은 배로 달아났다가 다시 아테네를 쳐들어가려 했으나, 아테네군이 이미 육로로 돌아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공격을 단념하고 본국으로 철군하였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군은 192명의 전사가가 발생했지만, 페르시아군은 약 6,400여명이 사망하는 대패를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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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 황영조 선수의 모습.

  

전투가 끝난 후 그리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전장에서 아테네까지 약 40를 달려 우리가 승리했다는 승전보를 아테네 시민들에게 알리고 절명했다는 일화가 있는데 이는 널리 알려진 마라톤의 유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기원전 490년 아테네가 페르시아군이 마라톤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듣고 전령 페이디피데스를 스파르타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파견하였으며, 페이디피데스는 약 200Km의 거리를 이틀에 걸쳐 돌주하였다고 한다.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위급한 상황을 듣고 원군을 파병하는데 동의 하였으나, 스파르타의 전통에 따라 만월에 출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도움 없이 몇몇 동맹도시의 도움으로 마라톤 평야에서 페르시아군을 물리쳤다고 한다. 여기서 헤로도토스는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 승전 소식을 아테네에 전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 마치 전설처럼 퍼져 있는 마라톤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는 후대에 와전된 이야기가 유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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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한 이봉주 선수의 모습.

  

이러한 일화가 유래되어 1896년 근대 올림픽이 아테네대회부터 육상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고, 마라톤 지역에서 아테네의 올림픽 메인 스타디움까지의 코스를 달리게 되었다. 이때 실제 거리를 측정해 보니 약 36.75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제7회 올림픽까지는 대회 개최지의 여건에 따라 통일된 거리를 달리는 방식이 아니라 대략 40·후의 대회 코스를 만들어 진행했다고 한다. 이후 1924년 제8회 파리올림픽 대회를 앞두고 마라톤 경기의 거리를 일정하게 통일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져 1908년 제4회 런던올림픽대회 때 윈저궁전에서 올림픽 스타디움까지의 거리인 42.195를 정식 거리로 채택하게 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게 된 것이다. 그 배경은 당시 영국 왕실에서 마라톤의 출발과 결승 광경을 편안히 보기 위하여 윈저 성의 동쪽 베란다에서 마라톤이 시작되어 화이트 시티(White city) 운동장에서 끝을 마치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이 요청에 따라 종래의 마라톤 거리 40km 235m보다 약 2km가 긴 마라톤 코스가 정해졌으며, 이 새로운 거리는 런던 올림픽 이래로 마라톤의 공식 거리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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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를 기념하는 주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또 있다. 기원전 아테네와 페르시아의 전투에서 유래된 것이 확실치 않은 마라톤을 금기하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페르시아의 후예인 현재 이란이다

이란은 역대 올림픽과 아시아 경기대회 등 세계대회에서 마라톤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단 1명도 없었으며, 자국의 도시인 테헤란에서 열린 1974년 아시안 게임에서는 마라톤이 아예 제외되었었다. 페르시아란 말 자체는 서방이나 그리스에서 부른 말이라서 이란 사람들은 처음부터 자기 나라를 이란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란은 아리아인의 나라라는 뜻으로 아리아인은 인도와 유럽 계통의 백인종을 가리키는 말로 오랜 옛날 북쪽에서 유럽 각지로 이동한 사람들이다.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먼저 침략한 것은 당시 제국주의 시대에는 있을 수 있으나, 조상들이 처참하게 참패한 것을 추모하기 위함이라면 마라톤 종목에 참여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영화 ‘300’도 이란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인들을 너무 야만적으로 왜곡했다는 이유로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이란의 역사의식은 비록 최첨단을 걷는 현대 시대에는 다소 맞지 않는 방향일 수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실천하는 모습에서 우리도 이런 정신을 배우는 건 긍정적인 일이 아닐까 한다. (김진국 전문기자/navyj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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