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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재구성] 새내기 3할, 이정후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기사입력 [2017-12-15 16:56]

1998년 8월 20일. 이정후의 생년월일이다. 이제 막 열아홉 살을 넘겼다. 그러나 이정후는 2017 프로야구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다. 내로라하는 대선배들이 썼던 어떤 기록보다 값진 이야기로 팬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희망을 던졌다.

휘문고를 졸업하고 넥센 히어로즈에 입단한 이정후는 144경기에 모두 나갔다. 아직 청소년 티가 남아 있는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강한 정신력과 체력으로 ‘전 경기’에 출전했다. 넥센의 경쟁력 높은 테이블세터로서 달성한 기록은 더욱 대단하다. 179개의 안타로 타율 3할2푼4리, 111득점, 47타점, 2홈런, 도루 1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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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의 호쾌한 타격

 

‘대단한’ 열아홉 이정후, 역대 신인 최다 안타와 최다 득점

 

안타와 득점은 역대 신인 최고 기록이다. ‘타격 천재’로 불린 장효조나 ‘안타 제조기’란 별명에 걸 맞는 활약을 펼친 이정훈, 서용빈, 이병규에 버금가는 방망이의 위력을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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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는 ‘바람의 아들’로 통하는 아버지 이종범의 후광 없이 스스로 스타덤에 오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당연히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물론 각 언론사의 신인왕을 독차지했다.

넥센 구단도 이정후의 활약과 가치를 인정했다. 고졸 첫 해 연봉 2,700만원에서 307.4% 오른 1억1000만원으로 재계약했다. 2007년 류현진이 한화에서 받았던 2년차 최고 연봉 1억 원까지 뛰어 넘었다.

이정후의 성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7시즌의 경험을 발판 삼아 2018년에는 ‘당당한 청년’ 이정후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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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이정후

 

이정후의 신인 3할은 1998년 강동우가 삼성 유니폼을 입고 123게임에서 124개의 안타로 3할 타율을 기록한 뒤 무려 19년 만이다. 강동우가 신인으로 마지막 3할 타자로 등록하던 해 이정후는 막 세상에 태어났다.

 

2000년대 새내기에게 100안타와 3할은 ‘하늘의 별’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해를 거듭하면서 질적, 양적으로 성장했다. 2000년대 들어 고졸 신인이 주전을 차지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격이었다. 그만큼 선수층이 두터워졌고, 기존 선수들의 기량도 발전했다. 고졸, 대졸을 가릴 것 없이 새내기로서 100안타를 기록하는 일은 엄청나게 힘겨웠다. 2003년엔 고려대를 졸업하고 현대 유니콘스에 입단한 이택근이 59개의 안타로 신인 최다 안타의 주인공이 됐을 정도다. 그 후 2016년까지 14년 동안 신인 타자들은 단 1명도 100안타를 넘어서지 못했다. 2009년 신일고를 졸업하고 KIA 타이거즈에 입단한 안치홍이 87개의 안타를 터뜨린 것이 최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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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신인 최다 안타와 최다 득점을 달성한 이정후

 

신인으로서 100안타도 어려울진대 3할 타율까지 달성하려면 확실하게 주전 자리를 꿰차고, 꾸준하게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 열아홉 이정후는 100안타 돌파는 물론 3할대 타율까지 달성했으니 뜨거운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장효조, 박종훈, 유두열은 ‘중고 신인’ 3할 삼총사

 

야구 팬들은 이젠 고인이 된 장효조와 유두열을 기억하고 있다. 이들은 1983년 박종훈과 함께 나란히 새내기로서 타율 3할 이상을 기록했다. 특히 장효조는 타율 3할6푼9리로 프로 데뷔 첫 해부터 타격왕을 차지했다. 그 해 신인상은 박종훈에게 돌아갔다. 프로 원년 이후 2016년까지 고졸 신인 3할 타자는 유두열이 유일했다.

이들은 똑같이 ‘중고 신인’이었다. 참신하지 않았다. 이미 장효조와 박종훈은 각각 한양대와 고려대를 졸업했고, 유두열은 마산상고를 거쳐 실업 팀 한국전력에서 잔뼈가 굳은 상태였다. 다만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하기 위해 프로 입단을 1년 유보했던 것이다. 오히려 기존 선수들보다 기량이 앞선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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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달인 장효조(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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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2001년) 타격 

 

‘삼성의 꼼수’ 양준혁, 유일하게 신인상+타격왕 동시 달성

 

프로 입단과 함께 팬들에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타자는 양준혁이었다. 양준혁은 대구상고를 거쳐 1992년 영남대를 졸업했다. 당연히 삼성 라이온즈에서 1차 1번으로 지명할 줄 알았다. 그러나 삼성의 선택은 왼손 투수 김태한이었다.

결국 2차 신인 드래프트에서 최우선 순위를 갖고 있던 쌍방울 레이더스가 양준혁을 지명했다. 그러나 양준혁은 쌍방울 입단을 거부했다. 삼성이 신인 지명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꼼수’를 쓴 모양새였다. 결국 양준혁은 상근 예비역 판정을 받아 방위로서 병역 의무를 대신하면서 1993년 삼성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양준혁은 신인상과 타격상을 동시에 수상한 유일한 레전드로 남아 있다. 1993년 106경기에 나가 130개의 안타로 타율 3할4푼1리를 기록하면서 타격 1위를 차지했고, 이종범과의 신인왕 경쟁에서 우위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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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혁(2010년) 타격

 

프로야구는 2017년으로 출범 35년째를 마무리했다. 건강한 성년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정후까지 데뷔 첫 해 3할 타율을 기록한 타자는 총 13명이다. 삼성은 1983년 장효조에 이어 1989년 강기웅, 1992년 동봉철, 1993년 양준혁, 1998년 강동우까지 역대 최다인 5명의 신인 3할 타자를 배출했다. LG에선 1994년 서용빈과 유지현, 1997년 이병규까지 3명의 새내기 3할 타자가 탄생했다.

 

새내기 3할 타자는 스타로 가는 길, 레전드가 되는 길의 시작일 뿐이다. 진정한 프로는 지난 기록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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