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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접속`

기사입력 [2018-01-04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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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본의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지던 노래 ‘A Lover's Concerto'를 아시는지요? 아마도 곡명을 정확히는 몰라도 음악의 선율이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면 , 저 노래!”하고 알 수 있을 만큼 귀에 익숙한 노래입니다. J. S 바흐가 두 번째 부인인 안나 막달레나를 위해 작곡했다는 클래식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노트‘((Notebook for Anna Magdalena) 중 한 곡을 재즈 버전으로 편곡한 노래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바하의 클래식 버전보다는 영화 접속‘(1997, 장윤현 감독)의 주제곡으로 더많이 알려져 있지요. 그리고 이 음악에 얽힌 바흐의 비하인드 스토리 또한 접속의 주제곡으로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면서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감미로운 음악으로 유명한 영화 접속1990년대 후반, 우리나라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던 시절에 나왔다는 것 또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석연휴가 시작되는 9월 중순에 개봉됐지만 관객의 뜨거운 호응으로 연말까지 계속 상영을 이어갔는데, 바로 그 무렵에 IMF사태가 터진 겁니다.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면서 외환보유액이 급감,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뉴스가 12월초에 나왔지요. 풍전등화에 놓인 국가 경제의 위기에 달달한 멜로영화의 돌풍이라니,,,

 

어쩌면 영화 접속을 통해서 현실의 고단함을 잠시 잊으려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부도사태에 직면한 연말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과 더불어 ‘A Lover's Concerto'가 무심하게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접속의 영화음악을 맡아 음악 수퍼바이저란 직책으로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조영욱 음악감독도 당시의 미묘한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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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의 마지막 장면을 찍고 있는 촬영현장. 남녀 주인공(한석규, 전도연)은 영화 러닝타임 106분 중에서 처음으로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직접 만나게 된다. 

 

조영욱 음악감독은 한국영화계의 관습적인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음악감독으로서 적통을 이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의 한국영화에서 음악감독의 영역은 대개 작곡가의 몫이었지, 음반 프로듀서 출신이 그런 역할을 맡은 적은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조영욱 음악감독은 영화 속의 주인공(한석규)이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 PD여서 분위기를 취재하고 싶다는 제작사(명필름)의 요청에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장윤현 감독 등 제작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장윤현 감독으로부터 영화의 삽입곡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훗날 장 감독은 음악에 대한 식견이 웬만한 전문가보다 뛰어난 것에 놀라 아예 영화음악까지 도움을 구하게 됐다고 밝혔지요.

조영욱 음악감독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한석규)이 틀어 줄 방송용 음악들을 선곡하고, 외국국이 많으니 외국음반사를 통해 저작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까지 일러주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는 아무 음악이나 대충 가져다 쓰던 시절인 터라 저작권료를 누구에게 어떻게 지불하는지조차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결국은 음반사 출신의 조영욱 음악감독이 영화 접속에 사용될 음악들의 저작권 문제까지 모두 해결했지요.

 

접속OST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나왔던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한 OST음반 판매 기록까지 세우게 됐습니다. 무려 75만장의 OST음반이 팔려나갔는데, 이 기록은 접속의 관객 동원 기록 70만 명을 넘어서는 수치입니다. ‘접속OST 음반이 얼마나 인기 돌풍을 일으켰는지 가늠할 수 있지요. 당시 이 OST음반을 제작하던 공장에서는 하루 스물네 시간 가동해서 2만 장을 생산할 수 있었는데, 빌려드는 주문량을 감당하지 못해 하청공장까지 가동시켜 하루 4만 장씩 찍어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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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여주인공(전도연)은 친구의 애인(김태우,왼쪽)을 짝사랑한다.

  

영화의 내용 또한 새로웠습니다. 인터넷이 본격 보급되기 직전에 유행했던 PC통신을 통해 젊은이들의 방황과 실연의 아픔을 치유한다는 게 접속의 주된 스토리입니다. 기존의 멜로영화들과는 달리 디지털 문명을 매개로 하는 러브 스토리가 매우 신선하게 어필했습니다. 당시 비평가들이나 언론에서도 신세대적 감성의 멜로영화라고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당시의 암울한 경제적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던 대중의 피난처로써의 역할도 적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직접 대면하지 않은 채 PC 모니터 너머의 타인과 소통하는 이른바 채팅에 탐닉하는 젊은이들의 숫자가 100만 명을 넘어설 때였다는 점도 접속의 흥행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접촉하지 않고 접속에 만족하는 세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실제로 영화 속의 남녀 주인공인 한석규와 전도연이 전체 106분의 러닝타임 중에서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밖에 없습니다. 물론 영화 속에서 상대의 존재를 모른 채 세 번 정도 우연히 스쳐 지나가긴 합니다만, 영화 내내 관객들은 PC 모니터에 깜박이는 아이디 해피엔드’(한석규)여인2’(전도연)의 채팅 화면을 통해 두 남녀의 연애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래선가요? 직접 마주보고 얘기하면 닭살 돋을 멘트들이 디지털 기기를 통해서는 별다른 저항감 없이 전달됐습니다. 영화 속의 두 남녀 주인공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까지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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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의 남자 주인공 한석규는 방송국의 음악 프로그램 PD로 나온다.

      

접속의 비하인드 스토리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건 캐스팅 비화입니다. 장윤현 감독과 제작사(명필름)에서는 원래 남자 주인공으로 이정재를 캐스팅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당시 이정재는 젊은 남자’(1994, 배창호 감독)TV드라마 모래시계’(1995)에서의 인기 상승으로 할 때였습니다. 평소 이정재와 가깝게 지내던 필자도 새로운 영화라면서 접속의 출연을 권유했습니다만 이정재는 시나리오로 읽는 PC 통신의 소통, 즉 모니터상에서의 채팅장면들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내며 고사했습니다. 반면에 한석규는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접속의 엄청난 성공 후, 영화계에는 모든 영화에는 주인이 있는 법이라는 속설이 또한번 회자됐지요.

 

여주인공 전도연의 캐스팅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 접속의 제작 예산이 빠듯했던 상황에서 제작사와 장윤현 감독은 이른바 톱스타급을 캐스팅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신인급 연기자들을 하나둘씩 오디션 형식으로 만나보고 있었는데, 어느날 제작사 사무실로 찾아온 전도연을 보고 장 감독과 심재명 대표는 그 자리에서 그녀를 여주인공으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전도연은 그래도 TV드라마를 통해 제법 얼굴을 알린 탤런트였는데, 이날 오디션에 청반바지를 입고 화장을 전혀 하지 않은 민낯으로 나타났던 겁니다. ‘접속에 가장 어울리는, ‘청초하고 수수한 매력의 여주인공이 바로 그녀였던 거지요.

 

또 한 사람, 장윤현 감독의 경우에도 예사롭지 않은 데뷔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1980년대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의 일원으로 오 꿈의 나라’(1989)파업전야(1990)를 공동연출하면서 이른바 영화운동권이었던 장 감독이 데뷔작으로 접속같은 말랑말랑한 멜로영화를 선택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 꿈의 나라는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단편영화였고, ‘파업전야는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을 그린 영화로 경찰당국의 추적을 피해가며 상영하던 영화였으니까요. 따라서 공동작업 방식으로 상업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제도에 대항하며 영화를 통해 현실참여 의지를 모색해오던 장윤현 감독의 노선이 일정 부분 궤도 수정을 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립영화의 투사가 상업영화의 시스템에서도 화려하게 비상했습니다. 영화 접속을 통해서 대중과의 접속에도 성공한 겁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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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속'의 여주인공 전도연은 홈쇼핑의 전화상담원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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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속'의 마지막 장면 장소인 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촬영팀이 이동레일을 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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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접속'의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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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현장에서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장윤현 감독(오른쪽)과 여주인공 전도연(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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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디리 극장 앞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 촬영을 끝내고 기념사진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제작 스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