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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비처럼 음악처럼`

기사입력 [2017-10-12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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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

난 당신을 생각해요

당신이 떠나시던 그 밤에

이렇게 비가 왔어요

난 오늘도 이 비를 맞으며

하루를 그냥 보내요

오 아름다운 음악같은

우리의 사랑의 이야기들은

흐르는 비처럼

너무 아프기 때문이죠

  

1986년 발표된 김현식과 봄 여름 가을 겨울3집 앨범에 수록된 명곡 중의 하나인 비처럼 음악처럼입니다. 가사를 가만히 음미하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슬픔이 절절이 느껴집니다. ‘사랑의 가객이란 수식어를 가졌던 고 김현식은 왜 이렇게 이별하고 외로운, 그래서 아프고 슬픈 노래를 불렀을까요? 곰곰 생각해보니 김현식의 노래 중에는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유작이자 메가히트 앨범이 된 6내 사랑 내 곁에에 이르기까지 대중에게 알려진 곡들 중 비교적 흥이 있는 가락을 담은 노래를 꼽으라면 사랑 사랑 사랑정도인데, 이것 또한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울고/ 누구나 한번쯤은 사랑에 웃고/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 (중략) 그 흔한 사랑 한번 못해본 사람/ 그 흔한 사랑 너무 많이 한 사람/ 그것이 바로 사랑 사랑 사랑이야하는 식입니다.

 

1990111일 서른 두 살의 나이로 요절한 고 김현식은 짧지만 참으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가객이었습니다. 그의 짧지만 극적인 삶을 영화로 옮겨낸 것이 동명의 비처럼 음악처럼’(1992, 안재석 감독)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3개월쯤 지난 일이었습니다. 물론 영화 제작 배경에는 그의 유작 앨범 내 사랑 내 곁에200만장 이상 팔려나가며 빅히트를 기록한 영향이 컸습니다. 고 김현식의 팬들만 극장으로 와도 엄청난 흥행성공이 보장되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하지만 영화는 논픽션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실제 삶을 토대로 하되, 사랑과 음악 동료들과의 우정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버무린 음악영화로 탄생됐습니다.

영화제작 당시 가장 큰 관심사는 누가 김현식 역할을 맡을 것인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김현식 영화라는 기획만으로 이미 당대 최고의 여배우인 심혜진을 캐스팅했습니다만, 노래를 잘 못하는 배우에게 립싱크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안재석 감독과 제작사(삼영필름)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다행히 고 김현식과 음악적 교감을 나눈 동료들로부터 과거 신촌블루스에서 함께 활동했던 가수 김형철을 소개받아 캐스팅했습니다. 김형철은 고 김현식의 생전에 호형호제 하던 사이였습니다. 음색도 비슷했습니다.

 

김형철의 캐스팅으로 고 김현식의 노래하는 모습은 제법 성공적으로 찍었습니다만 영화의 주된 내용이 음악 이야기 보다는 허구로 꾸며진 러브스토리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김형철의 멜로 연기부분에서 꽤 어색한 느낌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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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에서 주인공 현식의 음악동료로 제법 비중있는 조역(재훈 역)으로 열연한 조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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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의 주요 멤버들, 왼쪽부터 김형철 조상구 심혜진 안재석 감독.

 

고 김현식은 어려서 공부를 곧잘 했던 터라 중학생이 될 때까지는 음악과 별로 가까이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시절의 유행(?)에 따라 기타줄이나 튕기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밴드부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군기 잡으려는 밴드부 선배들과 주먹 다짐하고 자퇴한 뒤부터 공부와 담 쌓고 기타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서울 명동이나 종로 등지의 음악다방에서 아마추어 가수들이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흔했습니다. 고 김현식도 이렇게 이곳 저곳의 음악다방에서 노래를 부르며 노래 잘하는 신인으로 이름을 얻었고, 음반 작업의 기회도 얻게 되었습니다. 통기타 가수들의 대표격인 이장희의 눈에 들어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국으로 여행 떠난 이장희가 귀국하지 않은 채 미국에 그냥 눌러앉는 바람에 앨범 출시가 무산됐습니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입니다만 결핍이 성장을 낳는다는 말처럼 이 시련이 그에게는 가수에 대한 집념을 곧추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0봄 여름 가을 겨울을 타이틀곡으로 하는 1집 앨범이 나왔습니다. 성공적인 가수 데뷔였습니다. 안정적인 생활이 시작되면서 결혼도 하고, 아들도 얻었습니다. 또 동네 인근에서 부업으로 피자가게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직업인으로서의 가수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상에의 안주가 음악적인 퇴보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습니다. 차츰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하고, 노래에만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산실인 동아기획(대표 김영)에 둥지를 틀고, ‘사랑했어요’(1984, 2집 앨범)를 발표했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그의 명곡들이 이때부터 탄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둠 그 별빛’ ‘떠나가 버렸네’ ‘언제나 그대 내 곁에’ ‘넋두리’ ‘재회’ ‘나의 하루는’ ‘추억 만들기’ ‘내 사랑 내 곁에등등.

 

하지만 그는 외로움과의 싸움을 노래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술로 그 외로움을 풀었습니다. 결국 술 때문에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졌습니다.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의 주제음악을 강인원 권인하 등과 함께 녹음하던 1989년 무렵엔 그의 건강 상태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간경화 말기로 의사로부터 술 한 방울이라도 입에 대면 죽는다는 경고까지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좀체로 외로움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사랑하던 어머니와 누나도 캐나다 이민을 떠난 상태였고, 이혼 후 줄곧 혼자 지내왔던 그에게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건 술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지독한 외로움과의 싸움을 술로 버틴 셈이었습니다. 녹음실에서 녹음할 때도 술병을 옆에 끼고 살았을 정도였으니까요. 1990년 봄무렵, 짧은 인터뷰를 위해 필자와 호텔의 커피숍에서 마주했을 때도 그는 맥주 한 병을 주문해 마셨습니다. 필자의 걱정스런 눈빛을 의식한 그는 맥주 한 병은 약이라며 겸연쩍게 웃어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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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상구, 김형철, 심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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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철(왼쪽)은 고 김현식의 노래부르는 장면을 실감나게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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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철(왼쪽)은 고 김현식의 노래부르는 장면을 실감나게 연기했지만 심혜진과의

멜로연기에서는 다소 어색하다는 평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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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현식의 팬들만 극장으로 와도 대박일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던 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의 

제작사(삼영필름)은 다소 부진한 흥행결과에 아쉬움을 삼켜야했다.

 

영화의 음악은 흙 속에서 김현식을 건져올렸던 동아기획의 김영 대표가 맡았습니다. 김현식의 노래하는 장면 촬영 때는 김형철에게 라이브로 노래할 것을 주문했고, 김형철은 안재석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콘서트 장면도 신촌블루스의 라이브콘서트장에서 로케이션 촬영으로 진행했습니다.

 

고 김현식의 실제 삶과 비슷한 영화의 후반부, 재기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절망적인 폭음을 멈추지 못하는 모습들이 화면에 펼쳐질 때는 마치 생전의 김현식이 돌아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습니다. 각혈을 하면서도 마지막 녹음을 위해 마이크를 잡고 노래부르는 장면은 가슴 아픈 연민을 자아내기도 합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생전의 김현식이 노래하는 모습의 동영상을 삽입한 아이디어는 매우 신선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고 김현식의 팬들은 눈물을 쏟으며 잠시 행복감에 젖어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는 실제의 삶에서도, 또 영화 속에서도,,, 노래만 남기고 떠났지만 말입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김형철의 연기는 여러모로 다소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노래 부르는 장면 만큼은 박수를 받을 만 했습니다. 다만 여주인공(심혜진)과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춘 픽션의 영역이 지나치게 많다보니 음악에 대한 광기어린 집념이나 외로움, 절망, 죽음 등 고 김현식의 실제 삶을 느끼기에는 다소 아쉬웠지요. 

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은 서울 종로의 피카디리극장에서 개봉되어 25천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쳤습니다. ‘김현식의 팬들만 극장으로 와도 대박이라며 영화를 기획했던 제작사 입장에서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만 내쉬고 만 셈이 됐지요.

재미있는 사실 하나. 영화 비처럼 음악처럼1992년 이후 20년만인 지난 2012년에 또한번 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윤도현의 사랑할거야등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었던 김남경 감독이 임창정 유인영 주연으로 똑같은 제목을 붙여 김현식 추모 영화로 만든 것인데요, 영화 속에서는 비처럼 음악처럼을 임재범이 부르지만 영화의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현식 역을 연기했던 김형철은 2007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구요, 또 김현식 추모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을 연출했던 김남경 감독은 2010년 영화 후반작업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두들 하늘나라에서 김현식과 함께 안식에 들었기를 바랍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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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의 촬영 당시 안재석 감독과 조상구, 김형철, 심헤진(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은 마치 한 가족처럼 똘똘 뭉쳐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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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현장을 찾은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해보이는 안재석감독 조상구 심혜진 김형철(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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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현식의 노래 부르는 장면을 열연하고 있는 김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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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연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