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기록재구성

[기록 재구성] 38년 만의 기적, 두산 사상 첫 상대 전적 우위 우승

기사입력 [2019-10-02 13:18]

드라마다, 기적이다. ‘잠실 곰’들이 아무도 해보지 못한 재주를 부렸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처음으로 상대 전적에서 앞서 팀 창단 이후 첫 2년 연속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단일 시즌으로 복귀한 1989년 이후 페넌트레이스에서 통산 4번째 1위다.

 

이로써 두산은 1995년 김태형 감독 부임 이후 5시즌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대단한 팀’으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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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이 2019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날, 박세혁의 끝내기 안타로 2년 연속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프로야구 출범 이후 38년만에 처음으로 상대 전적 우위로 1위를 확정하는 극적인 순간을 연출했다. 박세혁이 1일 잠실 NC전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뒤 환호하고 있다. ㅣ 

 

두산은 올해 정규 시즌을 88승 1무 55패, 승률 6할1푼5리로 마무리했다. SK와 똑같은 성적이지만 상대 전적에서 9승7패로 앞섰다.

 

결국 ‘1∼5위 팀의 경우 동률이면 정규리그 상대 전적에 따라 순위를 정한다’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대회 규정에 따라 시월 첫 날, 꿈같은 순간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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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중순까지만 해도 두산의 우승을 점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우승의 맛을 아는 ‘두산 맨’들이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일’을 해냈다. 최다 경기차 역전 우승.

 

두산은 8월15일 1위 SK에게 무려 9게임이나 뒤진 채 2~3위를 오가는 상태였다. 포기하지 않았다. 차근차근, 뚜벅뚜벅 쫓아가다 시즌 마지막 날, 박세혁의 끝내기 안타로 꿈을 이뤘다.

 

종전 최다 경기차 역전 우승은 2011년의 삼성. 당시 1위였던 SK에게 7경기 뒤진 4위였지만 막판 뒤집기 페넌트레이스 1위에 올랐다.

 

또 하나의 ‘두산 신화’가 시작된다. 이제 느긋하게 한국시리즈를 준비하면 된다. 지난해 SK에게 밀려 통합 우승을 일궈내지 못했던 아픔을 되갚으려 한다.

 

# 두산의 아름다운 추격 - 9월을 빛낸 ‘잠실 곰’의 무한 뚝심

 

9월은 두산에게 희망이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그저 쫓아갔다.

SK는 9월 들어 심상치 않았다. 방망이가 무뎌졌다. 내리막이었다. 그래도 SK의 정규 시즌 1위는 떼 놓은 당상으로 여겼다.

 

두산의 주축 선수들은 정규 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왜 1승이 중요하고, 어떻게 승리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어떤 이들은 ‘우승 DNA’라고 말한다.

 

이런 요소들이 무서운 집중력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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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9일, 두산은 먼저 SK와의 상대 전적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더블헤더에서 1차전을 6-4로 이긴 뒤 2차전까지 7-3으로 싹쓸이했다. 7승7패로 똑같았던 상대 전적을 9승7패로 바꿔놓았다.

 

9월 28일, 마침내 SK와 공동 선두가 됐다.

 

SK가 대구 삼성전에서 연장 10회말 이학주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7-9로 무너질 때 두산은 잠실 한화전에서 연장 10회말 박건우의 끝내기 안타로 7-6으로 이겼다. 각각 두 경기씩 남긴 상황에서 두산이 122일 만에 공동 1위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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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이 1일 잠실 NC전에서 6-5로 승리, 정규 시즌 우승을 확정했다. 5시즌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성공한 두산 선수들이 9회말 1사 2루에서 중견수 앞으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한 박세혁(양 팔을 높이 들고 뛰어오르고 있다)과 함께 어우러져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그리고 두산은 9월 29일 LG를 3-0으로 제압하고, 1일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NC와의 최종전을 준비해 또 한 번 박세혁의 끝내기 안타로 6-5로 승리해 감격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SK는 팀 최다승 신기록을 작성하고도 고개를 숙였다. 무려 121일 동안 맨 앞에서 달렸지만 하늘이 돕지 않았다.

 

# 2019년 10월1일 잠실구장 - 박세혁의 끝내기로 만든 감격

 

2019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날이다.

 

SK는 전날 한화를 6-2로 꺾고 88승 1무 55패를 기록하고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 두산과 NC의 경기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두산은 반드시 NC를 잡아내 한다. 박정원 구단주도 잠실구장을 찾았다. 2만 5천여 관중이 가득 찼다. 원정 응원석 곳곳엔 SK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이 꽤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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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이 SK를 제치고 2019 정규 시즌 1위를 차지했다. 최종 성적은 똑같았지만 상대 전적에서 9승7패로 앞섰기 때문이다. 1일 잠실 NC전을 끝낸 뒤 김태형 감독(앞쪽 오른쪽)과 주장 오재원이 우승 컵을 들고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두산 선발은 후랭코프, NC는 최성영이었다. 두산이 유리한 승부라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담감 탓이었을까, 두산이 4회까지 0-2로 끌려갔다.

 

좀 늦게 타선에 시동이 걸렀다. 5회말 1사 1, 2루에서 3번 박건우가 NC의 4번째 박진우의 두들겨 1타점 좌전 안타를 날려 추격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1-2로 뒤진 7회말 NC의 6번째 투수 김건태의 잇단 견제 실수로 1점을 보태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두산 벤치와 팬들은 희망을 봤다. 환호했다. 그러나 8회초 3점이나 내주자 모두 찬물을 뒤집어쓴 듯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두산 선수들에겐 ‘뚝심’이 있었다. 2-5로 뒤진 8회말 곧바로 반격했다. 2사 2, 3루에서 1번 허경민이 2타점 중전안타를 날렸고, 계속된 2사 1루에선 2번 대타 김인태가 1타점 우중간 3루타를 터뜨렸다.

 

5-5, 승부는 예측불허. 두 팀은 8회까지 똑같이 7명의 투수를 투입하는 총력전으로 맞섰다.

 

9회초, 두산은 이영하를 마운드에 올렸다. 무실점으로 막았다. 9회말 NC도 장현식을 빼고 ‘원종현 카드’를 빼들었다.

 

선두타자 4번 오재일은 우익수 플라이 아웃. 두산 김태형 감독은 5번 백동훈 대신 국해성을 타석에 내보냈다. 우익선상으로 날아가는 2루타로 화답했다.

 

1사 2루.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두산 벤치에선 대주자 카드를 선택했다. 국해성 대신 김대한이 2루 주자로 나갔다. 짧은 안타에도 홈을 노리겠다는 의미였다.

 

6번 박세혁이 타석에 들어갔다. 주저하지 않았다. 초구를 때렸다. 2루수 오른쪽으로 강하게 굴러간 타구가 외야로 빠져 나갔다. 그 사이 2루 대주자 김대한이 홈까지 내댤렸다.

 

끝났다. 6-5로 두산이 이겼다. 박세혁의 끝내기 안타.

 

두산 선수들이 모두 마운드 쪽으로 튀어나갔다. 박세혁을 따라갔다. 김태형 감독도 코치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최고의 순간을 즐겼다. 환호하는 팬과 함께.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