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기록재구성

[기록 재구성] 한 이닝에 새긴 ‘16-13-20’의 의미

기사입력 [2019-04-08 14:16]

한화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롯데에겐 ‘끔찍한 사고’였다. 그것도 홈구장에서, 부산 팬들 앞에서.

 

아웃카운트 3개를 만들어내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한화가 4월 7일 화끈한 타선의 집중력을 앞세워 야구사를 다시 썼다. 한 이닝 최다 득점과 타점, 최다 안타, 그리고 최다 타석과 타수를 기록했다.

 

16-13-20.

 

한화는 이날 0-1로 뒤진 3회말에만 선두타자로 나갔던 7번 지성준이 3차례 타석에 들어서는 등 총 20타석을 소화하면서 정은원과 호잉의 홈런 2개를 포함한 13안타와 볼넷 3개, 실책 1개를 묶어 모두 16득점, 16타점을 기록했다. 선발 9명이 모두 득점했다. 역대 15번째 진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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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4월7일 부산 롯데전에서 한 이닝 최다 안타, 최다 득점과 타점, 최다 타석과 타수 신기록을 세웠다. 정은원(위)과 호잉의 홈런을 앞세워 3회에만 무려 16점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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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날 경기는 4회쯤부터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5회 들어 굵어지더니 6회초 한화의 공격이 시작되기 직전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래도 6회말까지 진행했지만 다시 빗발이 더욱 강해지면서 7회에 앞서 황인태 주심이 강우 콜드게임을 선언했다. 한화의 16-1, 6회 강우 콜드게임 승리.

 

‘열아홉’ 정은원이 중심에 있었다. 2번 정은원은 3회에만 3점 홈런을 포함해 2타수 2안타 5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7번 지성준과 8번 장진혁은 사상 처음으로 한 이닝에 3타석을 소화하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특히 3회 첫 타석에서 볼넷으로 나갔던 지성준은 2루타 2개를 보태면서 3타점을 올렸다. 한 이닝 2루타 2개는 역대 19번째.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 3회에 쏟아진 각종 기록은 한화에겐 기분 좋은 훈장이지만 롯데에겐 부끄러운 불명예였다.

 

# 공 하나가 만든 ‘참극’ - 3회초 무사 1, 2루 9번 오선진 타석

 

롯데 선발 장시환은 2회까지 깔끔한 피칭을 이어갔다. 2회초 1사 후 한화 5번 김태균에게 좌중간 안타를 내줬지만 6번 노시환을 3루 병살타로 잡아내면서 한숨을 돌렸다.

 

롯데는 2회말 공격에서 5번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허일이 시즌 1호 우월 1점포를 날려 유리한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장시환은 3회초 흔들렸다. 제구가 살짝 살짝 빗나갔다. 원하는 곳에 들어가지 않았다. 선두타자 7번 지성준에게 볼넷을 내주더니 8번 장진혁에게 우전안타까지 맞았다.

 

1점 앞선 상황이니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9번 오선진과의 대결도 초구와 2구에 연거푸 볼. 3구째 빠른 직구로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볼 카운트는 2볼 1스트라이크. 장시환은 내야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 4구째로 낮은 쪽을 선택해 회심의 공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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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선발 장시환이 3회초 무사 1, 2루에서 9번 오선진을 상대하고 있다. 볼카운트 2-1에서 4구째 바깥쪽 낮은 곳에 던진 직구가 볼 판정을 받자 크게 아쉬워했다. 결국 오선진도 볼넷으로 나가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KBSN스포츠 캡처)

 

그러나 황인태 주심의 손이 올라가지 않았다. 또 볼. 장시환은 아쉬운 표정이 뚜렷했다. 5구째는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다. 확연히 높은 쪽으로 날아갔다. 오선진까지 볼넷으로 걸어 나가 무사 만루가 됐다.

 

장시환이 오선진에게 던진 4구째가 스트라이크로 선언됐다면. 두고두고 장시환의 뇌리에 남을 장면이었다.

 

결국 장시환은 정직한 스트라이크를 던지기에 급급했고, 무사 만루에서 1번 정근우에게 초구, 한복판 직구를 던지다 역전 2타점 중전안타를 맞았다.

 

흐름이 한화 쪽으로 넘어갔다. 계속된 무사 1, 3루에선 2번 정은원에게 중월 3점홈런까지 내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1-5로 뒤집힌 채 무너졌다.

 

장시환은 3번 송광민에게 우전안타를 내준 뒤 윤길현으로 교체됐다. 무사 1루에서 4번 호잉부터 상대한 윤길현 역시 제구 탓에 애를 먹었고, 배팅볼 투수처럼 시속 141km 안팎의 공을 들쭉날쭉 던지다 난타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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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7일 부산 한화전에서 불명예 기록의 빌미를 제공한 롯데의 베테랑 투수 장시환(왼쪽)과 윤길현. 

 

장시환과 윤길현이 동반 추락했다. 장시환은 3회에만 6명의 타자를 상대하며 볼넷 2개와 4안타(홈런 1개 포함)로 6점을 내줬다. 윤길현은 13타자를 상대로 호잉에게 홈런 1개를 맞는 등 9안타와 볼넷 1개로 10실점(2자책)했다.

 

공 하나가 흐름을 좌지우지하고,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야구다. 기록은 영원하다. 불명예는 오래 간다. (이창호 전문기자 / news@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