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기록재구성

[기록 재구성] 뜨거운 개막전, ‘짱꼴라’부터 ‘구름 관중’까지

기사입력 [2019-03-25 00:20]

벌써 뜨겁다. 프로야구 개막을 기다려온 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3월23일, 2019 페넌트레이스가 시작되자 잠실 한화-두산전에 2만5000명, 광주 LG-KIA전에 2만500명, 부산 키움-롯데전에 2만4500명, 창원 삼성-NC전에 2만2112명이 몰려들어 4개 구장 매진 사례를 만들었고, 문학 KT-SK전의 2만1916명 등 총 11만4028명의 관중이 손에 손을 잡고 겨우내 기다렸던 야구를 즐겼다.

 

2009년 시즌 개막일이었던 4월4일에 기록했던 총 9만6800명을 훌쩍 넘었다. 역대 개막전 최다 관중 신기록으로 ‘야구의 봄’을 알렸다.

 

열기는 이틀째 이어졌다. 24일에도 총 10만312명이 쌀쌀한 봄기운도 아랑 곳 하지 않고 야구장으로 몰려갔다. 이틀 연속 10만 관중 이상을 기록한 것은 프로야구 38년 사상 처음이다.

 

잠광부마.jpg

▲야구의 봄이 찾아왔다. 지난 23일 개막한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으로 이틀 연속 10만 관중 이상을 기록했다. 개막 2연전이 열린 잠실구장, 광주 챔피언스필드, 창원 NC파크, 부산 사직구장(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은 첫 날부터 만원 사례를 연출하는 구름 관중이 몰려 들었다.    

 

KBO리그는 1982년 시작됐다. 해마다 봄이 오면 6개월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시나브로 38년째다. 숱한 스타가 명멸했고, 숱한 기록이 야구사에 남았다.

 

언제나 개막전은 설렌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속담처럼 누구에게나 첫 발의 의미는 남다르리라.

 

# ‘개막전의 사나이’는 장호연, 완봉승에 노히트 노런까지

 

장호연을 아시나요. 장호연은 1983년 OB에 입단해 1996년까지 13년 동안 활약했지만 지금은 살짝 잊힌 투수다.

 

그러나 개막전이 열릴 때마다 야구인들이나 팬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무쇠팔’ 최동원이나 ‘국보 투수’ 선동열도 이뤄내지 못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가 아니다. 충암고 때도, 동국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1983년 OB에 입단해서도 그랬다. “공 3개로 삼진을 잡는 것보다 공 1개로 맞춰 잡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다.

 

장호연 200108011.jpg

▲장호연은 대표적인 기교파 투수였다. 타자와의 수싸움에 능했다. 투구수를 최소화하면서 아웃 카운트를 늘릴 수 있다면 최선이라 생각했다. 장호연이 2001년 올드 스타 올스타전에서 투구하고 있다. 

   

장호연에겐 배짱이 있었다. 여기에 ‘팔색조’라 불린 만큼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면서 타자의 타격 타이밍을 흐트러뜨리는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새내기지만 1983년 4월2일 MBC와의 개막전 선발로 나갔다. 하기룡과 맞붙어 7-0 완봉승을 따냈다. 신인 최초였다. 모두 깜짝 놀랐다. 투구 내용과 기록이 뒷받침하니 거듭 개막전에 선발로 나갔다.

 

한 두 번이 아니다. 무려 9번이나 개막전 선발을 맡았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개막전 최다 선발 등판이다. 1985년부터 1990년까지는 6년 연속 개막전 선발로 나갔다. 한화 송진우(2001~2006년), 현대 정민태(1997~2001년, 2003~2004년 - 2002년은 해외 진출로 제외)와 함께 최다 개막전 연속 선발 등판 공동 1위다.

 

장호연은 개막전에서만 6승2패를 거둬 최다승 투수로 남아 있다. 1983년 MBC전 완봉승, 1988년 롯데전 노히트노런, 1990년 LG전 완투승으로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는 4년 연속 개막전 승리를 따내는 쾌거도 이뤘다.

 

특히 1988년 4월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개막전에선 윤학길과 맞붙어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99개의 공을 던져 3개의 4사구만 내주면서 4-0 승리를 이끌었다. 삼진은 단 1개도 없었다. KBO리그의 유일무이한 진기록이다.

 

역대 개막전 완투승.jpg

장호연은 개막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자기 페이스대로 공을 던졌다. 급하지 않았다. 능글능글, 느릿느릿. ‘허허실실 투구’로 상대 타자를 건드렸다. 표정도 없으니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짱꼴라’라 불렀다.

 

장호연은 불멸의 ‘개막전 사나이’다.

 

# 홈런에 울고 웃고, ‘개막 1호’ 이만수부터 베탄코트까지

 

야구는 홈런에 웃고 우는 게임이다. KBO리그는 출범 첫 해의 개막전부터 홈런에 웃고 우는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흥행을 예고했다.

 

1982년 3월27일 동대문구장에서 삼성과 MBC의 원년 개막전이 열렸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이 직접 시구자로 나섰다. 삼성은 황규봉, MBC는 이길환을 선발로 내세웠다.

 

삼성이 5회까지 5-1로 앞서나갔다. 6회초 4번 이만수는 뜻 깊은 아치를 그려 프로야구사에 1호 홈런 주인공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6-1로 앞서가던 승부는 삼성의 뜻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MBC는 감독 겸 선수였던 백인천의 추격 홈런에 이어 유승안의 동점 3점포 등으로 승부를 연장까지 이어갔다.

 

동대문구장을 가득 메운 2만3998명의 만원 관중들은 각본 없는 드라마를 만끽했다. 승리의 여신은 연장 10회말 MBC에게 미소를 보냈다. 7-7 동점이던 10회말 2사 만루에서 이종도가 삼성의 마무리 투수로 나선 이선희를 두들겨 극적인 홈런을 만들었다.

 

MBC의 11-7 역전승. 3시간 57분 동안 이어진 원년 개막전의 승부는 이종도의 끝내기 만루포로 대미를 장식했다.

 

그 후 개막전 연장 끝내기 홈런은 2번뿐. 2008년 3월29일 SK 정상호가 문학 LG전에서 4-4 동점이던 연장 11회말 대타로 나가 우규민으로 부터 끝내기 홈런을 날렸다. 2015년 3월28일 목동 개막전에선 넥센 서건창이 4-4 동점이던 연장 12회말 한화 송창식에게 극적인 우월 끝내기 아치를 그렸다.

 

이만수는 프로 원년 1호 홈런의 주인공이었지만 연장 10회에 터진 이종도의 끝내기 아치 탓에 빛을 잃었다. 최고의 왼손 투수로 평가받던 이선희는 패전의 아픔과 함께 ‘비운의 투수’가 됐다.

 

선한 20010812.jpg

▲한대화는 장호연과 함께 1983년 OB에 입단했다. 신인 때부터 개막전에 강했다. 통산 7개의 개막전 홈런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한대화(오른쪽, 당시 동국대 감독)가 2001년 8월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KIA전에 앞서 열린 이벤트를 진행하며 선동열 KBO 홍보위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KBO리그는 출발부터 이렇게 뜨거웠다.

 

장호연과 함께 1983년 OB에 입단한 한대화도 개막전 때마다 더욱 매서운 방망이를 휘둘렀다. 4월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MBC전에서 유종겸으로부터 4회에 신인선수 최초로 개막전 1호 홈런을 기록하는 등 개막전 통산 최다인 7개의 홈런으로 터뜨렸다. 개막전 최다 타점도 19개로 1위다.

 

한대화는 유니폼을 갈아입어 가면서 개막전 1호 홈런을 날렸다. 1990년 4월8일 광주 무등구장에서 열린 빙그레전에선 김대중을 두들겨 만루 아치를 그렸다. 1997년 4월12일 전주구장에서 열린 LG와의 개막전에선 김용수로 부터 2점포를 뽑았다.

 

KT 강백호는 지난해 개막전 때 데뷔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뜨렸다. 사상 첫 고졸 신인 데뷔 첫 타석 홈런, 개막전 신인 첫 타석 홈런, 최연소(18세 7개월 23일) 개막전 1호 홈런 등의 신기록을 만들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연도별 개막 축포.jpg

2019시즌 1호 홈런의 주인공은 한국 무대에 첫 선을 보인 NC 베탄코트. 3월23일 창원NC파크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삼성 맥과이어로부터 3점포를 날렸다.

 

베탄코트 20190323.jpg

▲ NC의 새 외국인 선수 베탄코트가 3월 23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삼성과의 개막전에서 시즌 1호 홈런을 친 뒤 타구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주말 공식 개막전을 성황리에 마무리한 프로야구는 26일부터 잠실구장에서 키움과 두산, 부산 사직구장에선 삼성과 롯데, 인천 문학구장에선 LG와 SK, 창원 NC파크에선 KT와 NC, 광주 챔피언스 필드에선 한화와 KIA가 3연전으로 또 한 번의 축제를 갖는다. 뜨거움은 계속된다. (이창호 전문기자 news@isportskorea.com)

 

19 개막 1호.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