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기록재구성

[기록 재구성] ‘홈런 풍년’, 사상 첫 한 시즌 ‘5인의 40홈런’

기사입력 [2018-10-02 11:22]

풍년이다. 홈런이 펑펑 터졌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처음으로 40홈런 이상을 쏘아올린 타자들이 무려 5명이다.

 

두산 김재환이 9월 12일 부산 롯데전에서 가장 먼저 40홈런 고지에 올라서더니 18일 고척 두산전에선 ‘돌아온 홈런왕’ 넥센 박병호가 40호 아치를 그렸다. 홈런왕 경쟁에 불을 붙이는 신호탄이었다.

 

40홈런은 ‘거포의 상징’이다. 외국인 타자들도 동참했다. SK 제이미 로맥이 9월 21일 인천 한화전, KT 멜 로하스 주니어가 9월 26일 수원 KIA전에서 각각 시즌 40호째 홈런을 날렸다. 한 시즌 40홈런 이상 4명으로 역대 타이 기록을 세웠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9월 마지막 날인 30일, 대구 원정에 나선 SK 한동민이 삼성 윤성환을 상대로 또 한번 40호 홈런을 기록하는 주인공으로 등극했다. 총 5명. KBO리그 최초로 한 시즌 40홈런 이상을 터뜨린 기념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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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 풍년이다.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40홈런 이상을 터뜨린 타자가 5명이나 나왔다. 왼쪽부터 SK 로맥, 넥센 박병호, 두산 김재환, KT로하스, SK 한동민.

 

역대 한 시즌 40홈런 이상 최다는 1999년 4명이었다. 삼성 이승엽이 54개, 한화 댄 로마이어가 45개, 삼성 찰스 스미스와 해태 트레이시 샌더스가 각각 40홈런을 기록하면서 시즌을 마감했다. 좀체 깨지지 않을 것 같은 기록이었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있는 것. 결국 19년 만에 한국프로야구 홈런사에 새로운 이정표가 생겼다.

 

# 최초의 40홈런 주인공은 ‘연습생 신화’ 장종훈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에서 최초로 40홈런 시대를 연 주인공은 빙그레 장종훈이었다. 장종훈은 1992년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중심으로서 125경기에 나가 타율 2할9푼9리를 기록하는 동안 홈런 41개, 타점 119개, 득점 106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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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먼저 40홈런 고지를 밟은 타자는 빙그레 장종훈(왼쪽)이었다. 1992년 41개로 홈런왕에 올랐다. 삼성 이승엽(오른쪽)은 40홈런을 너머 처음으로 50홈런 이상 기록한 타자다. 2003년에는 시즌 최다인 56개를 터뜨렸다.  

 

그 후 국내 타자들은 주춤했다. 1998년부터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면서 새로운 4번 타자들이 나타났다. OB의 타이론 우즈는 한국 무대 첫 해부터 42개의 아치를 그리면서 홈런왕을 차지했다.

 

홈런 타자가 절실했던 각 팀은 속속 ‘거포 외국인 타자’를 영입했고, 1999년 한화 로마이어, 삼성 스미스, 해태 샌더스가 이승엽과 함께 ‘40홈런 시대’를 활짝 열었다.

 

특히 이승엽은 체격 조건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4번 타자들과 치열한 장타 경쟁을 이어가면서 최고로 자리매김했다. 오히려 한 수 앞선 기량과 집념으로 이들을 모두 물리치고 1999년 54개를 터뜨려 당당히 홈런왕에 등극했다.

 

결국 이승엽은 2003년에는 심정수와의 박진감 넘치는 홈런 레이스 끝에 56개를 날려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과 아시아 최다 홈런 신기록까지 세웠다. 그 해 심정수도 53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40홈런’을 넘어 ‘50홈런 시대’가 시작됐다.

 

이승엽의 아시아 최다 홈런은 2013년 일본 야쿠르트의 외국인 선수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60홈런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았다.

 

# 2018년 9월 30일, 대구구장 - 한동민의 역대 10번째 토종 40홈런

 

SK와 삼성이 만났다. SK는 ‘2위 지키기’, 삼성은 ‘5위 추격’이 절실했다. SK는 잠수함 박종훈, 삼성은 베테랑 윤성환이 각각 선발로 나섰다.

 

선공에 나선 SK는 1회초 1번 노수광이 중월 2루타를 날리면서 상큼하게 출발했다. 선취점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2번 한동민이 타석에 나갔다. 전날 삼성전에서 보니아를 상대로 1회초 시즌 38호 우월 2점포와 5회초 시즌 39호 우월 1점 홈런으로 장타력에 불을 붙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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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민(오른쪽)은 최정과 함께 SK의 '토종 거포'로서 자리매김했다. KBO리그 역대 10번째 토종 40홈런을 기록하면서 장타력을 뽐내고 있다.  

 

윤성환도 조심스러웠다. 초구부터 3구까지 모두 바깥쪽 공으로 한동민을 유혹했다. 그러나 쉽게 방망이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볼 카운트 2-1. 윤성환은 4구째 몸쪽 변화구를 선택했다. 가운데로 밋밋하게 떨어지는 시속 107km의 커브였다.

 

한동민이 차분하게 받아쳤다.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타구에 힘이 실렸다. 오른쪽 담장을 넘어갔다. 선제 결승 우월 2점포, 시즌 40호 아치였다. SK는 이날 8-4로 이겨 ‘2위 지키기’의 유리한 고지에 올라섰고, 삼성은 아쉬운 패배로 ‘5위 다툼’에서 살짝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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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민은 장종훈, 이승엽, 박경완, 심정수, 이대호, 강정호, 박병호, 최정, 김재환에 이어 40홈런 고지를 밟은 10번째 국내 선수이자 SK의 역대 왼손 타자 최초로 ‘40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대학을 거쳐 KBO리그에 진출한 타자 중 처음으로 ‘40홈런’을 기록했다.

 

# 2018년 9월 26일 수원구장 - 로하스의 ‘거포 본능’, KT 첫 40홈런

 

멜 로하스 주니어는 KT의 듬직한 중심타자다. 수원 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IA저에 4번 중견수로 선발 출전했다.

 

KT는 ‘가을 야구’를 위해 갈 길 바쁜 KIA를 상대로 1회말부터 맹공을 퍼부었다. 1번 강백호가 유격수 내야안타로 나간 뒤 2번 심우준의 타석 때 2루 도루까지 성공시켜 첫 득점 기회를 잡았다. 심우준은 우월 2루타로 강백호를 홈까지 불러들였다. 3번 유한준도 1-0으로 앞선 무사 2루에서 우전 적시타로 화답했다.

 

2-0, 무사 1루. 4번 로하스는 KIA 선발 임기영을 상대로 뽑아낸 3안타를 모두 홈런으로 장식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까.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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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로하스는 팀 최다 홈런이었던 26개를 일찌감치 갈아치운데 이어 30홈런, 40홈런까지 터뜨리면서 '거포'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 시속 132km의 어정쩡한 공이 몸쪽으로 들어오자 보란듯이 받아쳤다. 오른쪽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30m짜리 2점포. 올 시즌 4번째로 40번째 아치를 그렸다.

 

이미 2015년 김상현이 기록했던 구단 최다인 26개를 갈아치운 뒤 30홈런을 넘어 40홈런까지 터뜨리면서 ‘거포 본능'을 마음껏 뽐냈다. KT는 9-2로 승리했고, 선발 김민은 기분좋게 시즌 3승째를 올렸다.

 

# 2018년 9월 21일 인천 문학구장 - 로맥의 SK 외국인 타자 두번째 40홈런

 

제이미 로맥은 SK를 ‘거포 군단’을 이끌고 있는 중심 타자다. 최정, 한동민, 김동엽 등과 함께 ‘공포의 장타 군단’을 만들었다. ‘2위 경쟁’을 하고 있는 한화와 3-3으로 팽팽하게 맞선 7회말. 한화 세 번째 투수 권혁은 선두타자 9번 김성현과 1번 노수광을 범타로 처리했다.

 

그러나 2번 한동민에게 볼넷을 내줬다. SK 힐만 감독은 한동민을 빼고 대주자 김재현을 투입하면서 승부수를 던졌다.

 

권혁은 3번 로맥을 상대로 철저하게 바깥쪽 낮은 곳을 공략했다. 그러나 로맥은 따라다니지 않았다. 풀카운트까지 승부를 이어갔다. 권혁은 6구째 포크볼을 던졌다. 낮은 스트라이크 존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가운데 쪽에서 떨어졌다.

 

로맥은 완전한 중심 이동을 하지 못했다. 타격 자세로 조금 어정쩡했다. 그러나 스트라이드를 한 왼쪽 발 등 위에서 공을 맞히고 힘껏 방망이를 잡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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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로맥(왼쪽)은 '거포 군단'을 이끄는 중심 타자다. SK 구단 두번째로 40홈런을 터뜨린 외국인 타자로 등록했다. 한동민(오른쪽)과 함께 한 시즌 최다 40홈런을 기록한 5명의 거포 중 한 명이 됐다.   

 

하얀 포물선을 그리며 왼쪽 담장 너머로 공이 날아갔다. 시즌 40호째 2점 홈런이 결승포였다. SK는 9회초 1점을 내줬지만 로맥의 결승 2점 홈런 덕에 5-4로 이겼다. 2002년 페르난데스가 SK 유니폼을 입고 홈런 45개를 기록한 이후 두 번째로 40홈런 고지를 밟은 외국인 타자로 등록했다.

 

홈런이 쏟아진다. ‘타고투저’ 탓이다. 9월까지 무려 1663개의 홈런이 터졌다. 역대 최다였던 지난해 1547개를 넘어선지 오래다. 그렇다고 ‘40홈런’까지 평가절하할 수 있을까.

 

홈런은 힘만 있다고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투수가 약하다고 무한정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상 최초로 5명의 40홈런 타자가 탄생한 것은 의미 있는 이정표임이 분명하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