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기록재구성

[기록 재구성] ‘베테랑의 품격’ 3인3색, 개인 통산 800타점

기사입력 [2018-05-30 09:41]

FA는 부와 명예의 상징이다. 정상급 FA들은 많은 몸값을 받고 오랫동안 몸담았던 옛 팀을 떠나 새 팀의 유니폼을 입는다. 팬이나 구단의 기대치가 높으니 스스로 느끼는 부담감 또한 클 수밖에 없다.

 

‘먹튀’라는 불명예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성적으로, 기록으로 답해야 하는 것이 바로 프로 세계다.

 

NC 박석민(33), LG 김현수(30), 삼성 강민호(33)는 FA로서 정든 친정을 떠나 새로운 팀과 호흡하고 있다. 박석민은 지난해 삼성에서 NC로, 김현수는 올해 두산과 볼티모어 오리올즈를 거쳐 LG로, 강민호는 ‘구도’ 부산의 안방마님에서 달구벌 사나이로 각각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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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들의 기록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뛰어난 타점 능력을 지닌 NC 박석민, LG 김현수, 삼성 강민호(왼쪽부터)가 올 시즌 차례차례 개인 통산 800타점 고지를 넘어섰다. 

 

시즌 초반 이들이 차례차례 ‘개인 통산 800타점’이란 의미 있는 기록을 달성했다. 프로 입단 이후 FA의 자격을 얻기까지 긴 시간 꾸준하게 보여준 ‘타점 능력’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찍었다.

 

박석민이 3월25일 역대 30번째로 개인 통산 800타점을 기록한 데 이어 5월20일엔 김현수, 이틀 뒤인 5월22일엔 강민호가 각각 역대 31번째와 32번째로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이들의 방망이는 여전히 뜨겁다.

 

NC 박석민, 대타로 만든 조용한 800타점

 

박석민은 올 시즌 애를 먹고 있다. 부상이 발목을 잡고 있다. 꾸준하게 경기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팀도 개인도 모두 답답하다. 성적도 신통치 않다. 5월29일 현재 44경기에 나가 타율 2할3푼7리과 홈런 6개, 21타점.

 

역대 30번째 개인 통산 800타점도 조용히 달성했다. 언론과 팬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타로 나가 내야안타로 2타점을 보태 800타점을 기록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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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석민은 지난 시즌부터 삼성에서 NC로 이적해 뛰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부상에 발목이 잡혀 시즌 초반 어려움을 겪고 있다.  

 

# 2018년 3월 25일 마산구장, NC - LG전 5회말

 

NC가 홈인 창원 마산구장에서 LG와 개막 2연전을 가졌다. NC는 3월 24일 개막전에서 왕웨이중을 선발로 내세워 LG를 4-2로 꺾었다. 출발이 좋았다. 박석민은 선발로 출발하지 못했다. 주전 3루수는 노진혁.

 

지난 시즌까지 통산 798타점을 기록 중이던 박석민은 팔꿈치 부상으로 시범경기도 2타석 밖에 소화하지 못한 상태였으니 김경문 감독은 ‘관리’를 선택했다. 박석민은 7회말 1사 후 9번 신진호의 타석 때 대타로 나가 볼넷을 얻어낸 뒤 대주자 이상호로 교체됐다. 타점을 추가할 기회가 없었다.

 

3월25일 박석민은 또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NC가 4-0으로 앞선 5회말 2사 만루에서 기회를 잡았다. 김경문 감독은 9번 신진호 대신 박석민을 타석에 세웠다.

 

박석민은 적극적이었다. 선발 김대현에 이어 5회말 4번 스크럭스의 타석부터 마운드를 이어받은 김지용을 상대로 초구부터 방망이를 돌렸다. 타구는 투수 정면으로 날아갔다. 김대현은 왼쪽 다리로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글러브를 내밀었다.

 

그러나 박석민이 때린 공은 글러브 밑을 지나 정강이 부근에 맞았다. 2루 쪽으로 스타트를끊었던 LG 2루수 강승호가 몸을 돌려 타구를 따라갔지만 이미 확 넓어진 1루수와 2루수 사이로 굴러갔다. 맨 땅과 잔디의 경계선 부근에서 공을 잡았지만 일찌감치 베이스러닝을 시작한 3루주자 모창민에 이어 2루주자 이종욱까지 홈을 밟았다.

 

공식 기록은 2타점 2루 내야안타. LG는 곧바로 타구에 맞은 김지용을 빼고 최성훈을 투입했다.

 

결국 NC는 7-1로 승리하면서 개막 2연전을 싹쓸이했다. 박석민은 역대 30번째 개인 통산 800타점의 주인공이 됐다.

 

LG 김현수, ‘유턴파’ 존재감을 증명한 800타점

 

지금 김현수는 LG 공수의 중심이다. 특히 타선에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면서 ‘신바람 야구’를 되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5월 29일 현재 55경기에 나가 타율 3할7푼2리와 홈런 9개, 41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박용택과 함께 아주 위력적인 ‘왼손 쌍포’로 자리매김했다.

 

김현수는 2006년 신일고를 졸업하고 육성 선수로 입단했지만 두산에서 꽃을 피웠다. ‘배팅 머신’이라 불릴 정도였다. 그리고 2016년 FA 자격으로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진출해 2년 동안 활약한 뒤 LG로 돌아왔다.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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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수는 메이저리그 볼티모어를 거쳐 유턴하면서 친정팀 두산이 아닌 LG를 선택했다. 두산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뒤 LG에서도 공수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현수(아래 왼쪽)가 류중일 감독과 승리의 주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 2018년 5월 20일 잠실구장, LG - 한화전 1회말

 

LG는 선발로 차우찬, 한화는 휠러를 내세웠다. 차우찬은 삼성에서 이적해 LG 마운드의 재건을 이끌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반드시 잡아야 할 게임이었다. LG 선수단은 이날 별세한 구본무 회장을 기리기 위해 모두 검은색 ‘근조(謹弔)’ 리본을 달고 출전했다.

 

차우찬은 1회초 한화 공격을 잘 막았다. 1번 이용규를 유격수 플라이로 잡아낸 뒤 2번 정근우에게 유격수 내야 안타를 맞았지만 3번 송광민을 유격수 병살타로 처리했다.

 

1회말 LG 공격.

 

1번 이형종이 공을 맞고 출루했다. 2번 오지환은 좌익선상 2루타를 날려 무사 2, 3루를 만들었다. 3번 박용택도 몸에 맞는 공으로 무사 만루.

 

이날 4번으로 출전한 김현수가 타석에 나갔다. 초구는 파울, 2구는 볼. 김현수는 3구째 바깥쪽 변화구를 어정쩡하게 스윙했다. 행운이 따랐다. 빗맞은 타구가 느리게 유격수 앞으로 굴러갔다.

 

하주석이 재빠르게 달려 나와 러닝 스로우로 타자주자 김현수를 1루에서 잡아내려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 김현수의 1타점 내야안타. LG가 선취점을 뽑았다.

 

김현수는 멋쩍은 표정으로 특유의 미소를 머금고 1루에서 팬들의 환호성을 들었다. 역대 31번째 개인 통산 800타점을 기록했다.

 

여하튼 기분 좋은 출발이다. LG는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고 유리한 흐름을 이끌어나갔다.

 

LG가 4-1로 앞선 7회말 1사 후 4번 김현수가 다시 타석에 섰다.

 

한화 한용덕 감독은 7회부터 선발 휠러를 왼손투수 박주홍으로 교체했다. 초구 볼, 2구째도 볼. 3구가 몸쪽으로 들어오자 김현수가 방망이를 날카롭게 돌렸다. 타구는 쭉쭉 뻗어나가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시즌 8호이자 개인 통산 150호 아치였다. 역대 43번째.

 

김현수는 통산 800타점에 이어 150호 홈런까지, 팀도 6-2로 이겼으니 세배의 기쁨을 만끽했다.

 

삼성 강민호, 친정을 울린 비수 같은 800타점

  

강민호는 최고 포수다. 타격 능력까지 갖췄다.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2004년 롯데에 입단한 뒤 주전 포수로 성장했고, 국가대표로도 최상의 모습을 보였다. 부산 사직구장에선 홈 경기가 열릴 때마다 ‘강민호’을 연호하는 팬들의 사랑이 대단했다.

 

그런 강민호가 상행선 경부선을 타고 이적했다. 부산에서 대구로 갔다. 이승엽의 은퇴로 공격력에 한계를 드러낸 삼성이 강민호를 원했다. 28일 현재 48게임에 나가 타율 2할7푼과 홈런 11개, 31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롯데 시절만큼 강한 인상을 남기는데 한계를 보였던 강민호가 마침내 영양 만점의 활약을 펼쳤다. 역전포를 앞세워 친정 팀 롯데를 아주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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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가 롯데에서 삼성으로 이적했다. 강민호는 부산 사직구장의 스타였다. 2013년 홈런을 친 뒤 사직구장 1루 더그아웃 앞에서 외국인 투수 유먼과 익살맞은 홈런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삼성에서 개인 통산 800타점을 5월22일 롯데전에서 역전 홈런으로 달성한 강민호가  박재현1루 코치와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 2018년 5월 22일 대구구장, 삼성 - 롯데전 7회말

 

삼성은 7회초까지 0-4로 끌려갔다. 선발 윤성환이 흔들렸고, 타자들은 듀브론트의 호투에 눌렸다. 롯데는 7회말 수비부터 선발 듀브론트를 진명호로 교체했다. 승리를 굳히기 위해 필승조를 투입했다.

 

롯데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진명호의 첫 상대였던 삼성 8번 강한울의 평범한 유격수 땅볼이 실책으로 이어지면서 반전이 시작됐다. 삼성 김한수 감독은 무사 1루에서 9번 김호재의 타석 때 대타 박한이로 승부를 걸었다. 박한이는 우전안타로 화답하며 무사 1, 3루를 만들었다.

 

1번 박해민과 2번 김헌곤이 맥없이 물러나는 바람에 추격 기회가 날아가는 듯 했다. 그러나 3번 이원석이 2타점 우중간 2루타로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렸다. 2-4로 추격하자 4번 러프의 타석부터 다시 진명호를 빼고 오현택을 마운드에 올렸다. 불을 끄지 못했다. 러프가 1타점 중전 적시타를 날렸다.

 

3-4까지 바짝 따라간 2사 1루에서 5번 강민호는 보란 듯이 오현택의 초구를 잡아당겼다. 하얀 공이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팬들이 환호했다. 개인 통산 5000타수째에서 올 시즌 8호 아치로 역전 2타점 좌월 홈런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800타점을 달성했다.

 

대구 라이온즈 파크의 외야 전광판에 의미 있는 대기록을 팬들에게 알리는 자막이 선명했다. 만원 관중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삼성은 전세를 뒤집자 승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8회말 강민호가 희생플라이로 1타점을 추가하는 등 삼성은 또 5점을 추가해 10-4로 역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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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800타점은 ‘헐크’ 이만수, 이승엽은 최연소-최소 경기

 

1982년 출범한 KBO리그에서 최초로 개인 통산 800타점을 달성한 선수는 삼성 이만수였다. ‘헐크’라 불리던 이만수는 1995년 7월 1일 잠실 LG전에서 36세 9개월 12일 만에 대기록을 달성했다. ‘공격형 포수’의 전형으로 기억되는 이정표를 만들었다.

 

‘라이언 킹’ 이승엽은 2002년 10월 12일 대구 현대전에서 역대 5번째 개인 통산 800타점을 기록했다. 통산 1003경기, 26세 1개월 24일 만에 최고 타자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역대 최연소, 최소 경기’였다.

  

‘타점 능력’은 찬스에 강한 타자를 판가름하는 잣대다. 올 시즌 800타점 고지에 올라선 박석민, 김현수, 강민호의 기록 행진은 진행 중이다. (이창호 전문기자 /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