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기록재구성

[기록 재구성] ‘통쾌, 상쾌’ 끝내기 아치 - 이대호의 짜릿함

기사입력 [2018-04-26 12:45]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 승패의 주요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부의 짜릿함은 밤 하늘에 아치를 그리며 담장 밖으로 날아가는 백구가 전해준다. 하얀 포물선엔 기쁨과 슬픔이 녹아 있다. 

 

홈런은 '마약'같다. 패색이 짙은 승부를 한 순간에 뒤집는 한방이라면 그 환희는 상상 이상이다. 홈런 타자는 물론 동료 선수들, 관중석의 팬들이 동시에 함성을 내지르며 시나브로 짜릿함에 빠진다.

 

야구는 ‘통쾌, 상쾌’ 한 스포츠다. 한방으로 전체를 뒤집을 수 있는 게임이다. 홈런 때문이다. 백미는 역시 역전 끝내기포다.

 

2018 신한은행 마이카 프로야구에서 시즌 1호이자 통산 63호째 역전 끝내기 홈런이 터져다. 주인공은 롯데의 ‘영원한 4번’ 이대호. 4월 18일 부산 삼성전에서 연장 12회말, 드라마 같은 승부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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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 4번 이대호가 4월18일 부산 삼성전에서 6-7로 패색이 짙던 연장 12회말 극적인 역전 끝내기 2점포를 사직구장 왼쪽 담장 너머롤 날려 보낸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 2018년 4월 18일 부산 사직구장, 연장 12회말

 

‘낙동강 더비’가 열렸다. 롯데가 홈으로 삼성을 불렀다. 꼭 이겨야 할 게임이다. 쉽지 않았다.

 

홈런이 난무했다. 결국 이대호의 역전 끝내기 홈런이 연장 12회까지 4시간 56분의 긴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6-7로 뒤진 연장 12회말, 선두타자는 유격수로 교체 투입된 1번 문규현이다. 삼성 벤치에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는 타자다. 삼성은 연장 11회, 1이닝을 무실점으로 책임진 베테랑 권오준 대신 KIA에서 이적한 한기주를 마운드에 올렸다.

 

문규현이 다시 추격의 물꼬를 열었다. 중전안타로 나간다. 2번 이병규는 중견수 플라이. 1루주자 문규현이 2루까지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한다. 3번 손아섭은 ‘매의 눈’으로 한기주의 공을 노려보더니 왼쪽으로 짧게 밀어치는 스윙으로 좌전안타를 만든다.

 

1사 1, 2루. 이제 기대할 것은 4번 이대호 뿐이다. 이대호는 3-6으로 뒤진 8회말에도 밀어치기 3점포로 승부를 연장까지 몰아가지 않았던가. 사직구장을 찾은 8천여 명의 팬들이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환호했다.

 

초구는 볼, 2구는 헛스윙.

 

이대호는 3구째 몸쪽으로 밋밋하게 높은 공이 들어오자 방망이를 휘둘렀다. 좋은 스윙 궤적은 아니다. 얼핏 빗맞은 듯 했다. 공이 높이 솟구쳤다. 한기주도 고개를 들었다. 설마 ‘넘어가기야 하겠냐’는 표정이다.

 

계속 힘이 실려 날아가더니 사직구장의 왼쪽 담장을 넘어갔다. 역전 끝내기 홈런, ‘이대호의 날’이다.

 

이대호는 2006년 4월 16일 부산 LG전 때도 4-5로 9회말 경헌호로부터 오른쪽 담장 너머로 역전 끝내기 2점 아치를 그린 경험이 있다. 역전 끝내기 홈런은 개인 2호다.

 

롯데는 꼴찌였다. 4월 17일까지 5승13패. 여전히 개막 7연패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도 비슷하다. 7승13패로 9위.

 

4월 18일 삼성은 장원삼, 롯데는 김원중을 선발로 내세웠다.

 

초반부터 롯데는 끌려갔다. 장원삼이 효과적으로 경기를 이끌었다. 삼성 타선도 적시에 터졌다. 2-0으로 앞선 3회초 1사 후 2번 김상수가 좌중월 홈런으로 점수차를 3-0으로 벌리더니 4번 러프까지 좌월 2점포를 날려 5-0으로 앞서면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았다.

 

롯데는 답답했다. 그나마 0-6으로 뒤진 5회말 1사 후 8번 신본기가 추격의 발판을 놓는 좌월 1점 홈런을 날렸다. 그리고 1-6이던 6회말 1사 1루에서 5번 민병헌이 좌월 2점 아치를 그려 장원삼의 교체를 자극했다.

 

이대호도 추격전에 합류했다. 3-6으로 뒤진 8회말 1사 1, 2루에서 삼성의 필승조 심창민의 공을 밀어쳐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겨 버렸다. 동점 3점포였다.

 

이대호는 타선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신바람을 냈다.

 

역시 이대호, 타율 2할3리에서 4할까지

 

3월 27일 잠실 두산전에서 통산 33번째 ‘누의 공과’를 남기는 불명예를 겪고, 3월 31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NC전에서 패한 뒤 집으로 가던 중 극성 팬이 던진 튀긴 닭 박스까지 맞아야 하는 등 힘겨웠던 시간도 함께 날려버렸다.

 

롯데는 올 시즌 개막 이후 7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이대호는 개막 이후 9게임 째였던 4월 3일 한화전을 끝냈을 때는 2할3리까지 떨어지는 등 심한 스트레스로 시달렸다.

 

그러나 이대호는 스스로의 힘을 이겨냈다. 바닥을 친 뒤 오름세를 타고 있다. 4월 7일 부산 LG전에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한 뒤 25일 수원 kt전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을 올릴 때까지 14게임 연속 안타를 터뜨리고 있다. 타율을 4할까지 끌어올렸다. 홈런 7개와 타점 22개.

 

역시 이대호다. 특히 4월 13일 광주 KIA전에서 5타수 3안타를 몰아치더니 25일 수원 kt전에서 5타수 3안타를 기록할 때까지 9게임 연속 멀티히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덩달아 롯데는 25일 수원 kt전에서 5-4로 승리하면서 뒤늦게나마 시즌 10승(15패)을 달성하면서 처음으로 탈꼴찌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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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은 역대 최다, 이택근은 대타 만루포

 

프로야구 1호 역전 끝내기 홈런은 1982년 7월 15일 삼성 함학수가 기록했다. 대구 시민구장에서 열린 해태전에서 5-6으로 뒤진 9회말 방수원으로부터 좌월 3점포를 날려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역전 끝내기 홈런은 누구나 터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 기회가 와야 하고, 기회가 왔을 때 끝낼 수 있는 힘과 기량이 준비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영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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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태균(가운데 헬멧 쓴 선수)이 2004년 4월6일 대전 SK전에서 9회말 프로 데뷔 첫 역전 끝내기 홈런을 터뜨린 뒤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바로 오른쪽에서 김태균의 헬멧을 두드리는 선수는 당시 고참 투수로 활약했던 한용덕 감독이다. 

 

한화 김태균은 1982년 프로 출범 이후 역전 끝내기 홈런을 가장 많이 터뜨렸다. 유일하게 총 3차례나 기쁨을 만끽했다.

 

개인 1호는 2004년 4월 6일 대전 SK전. 5-6으로 뒤진 9회말 이상훈으로부터 좌월 2점포를 날려 7대6의 역전승을 이끌었다. 2001년 프로에 입단한 뒤 4년째를 맞아 짜릿한 첫 경험을 했다.

김태균은 2008년 4월 27일 대전 두산전에서 임태훈, 2014년 6월 24일 대전 롯데전에서 김승회를 상대로 각각 역전 끝내기 아치를 그렸다.

 

이밖에 이대호처럼 개인 통산 2차례씩 역전 끝내기포를 날린 선수는 양승관, 한영준, 마해영, 안경현, 김한수, 이호준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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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넥센 이택근은 2017년 5월18일 고척돔에서 열린 한화전에서 4-6으로 뒤진 9회말 만루에서 대타로 나가 역전 좌월 끝내기 아치를 그렸다. 베테랑 타자의 경륜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총 63개의 역전 끝내기 홈런 중 만루포는 모두 6차례 밤하늘을 수놓았다. 1995년 7월 25일 삼성 이동수를 시작으로 2002년 4월 10일 롯데 김응국, 2009년 4월 10일 LG 페타지니, 2009년 8월 9일 KIA 김원섭, 2014년 9월 9일 NC 이종욱, 2017년 5월 18일 넥센 이택근이 각각 기록했다.  

 

특히 이택근은 역대 7번째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포를 날려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창호 전문기자/news@isports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