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세의 무비스토리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할렐루야`

기사입력 [2019-04-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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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 영화를 만나는 게 흔치 않은 일이 되었습니다만 과거에는 제법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장르였습니다.


철썩 때린다는 뜻의 슬랩과 막대기를 뜻하는 스틱이 합쳐져 막대기로 마구 때리듯한 소동, 즉 과장된 몸짓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를 일컫는 말이었지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나 영국배우 로안 앳킨슨의 미스터 빈등과 같은 영화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지요.

국내에서는 영구캐릭터의 심형래나 맹구캐릭터의 이창훈 등을 대표적인 슬랩스틱 코미디언으로 꼽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한국영화에서는 1990년대를 풍미했던 박중훈이 슬랩스틱 코미디 연기로 독보적인 위상을 구축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9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특히 코미디 영화에 관한 한 박중훈의 존재감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깜보’(1986, 이황림 감독)로 데뷔한 박중훈은 수많은 코미디 영화에서 다양한 표정연기와 더불어 폭소를 자아내는 과장된 액션 연기로 코믹연기의 달인이란 소리까지 들었으니까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이규형 감독)를 비롯해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이명세 감독) ‘투캅스’(1993, 강우석 감독) ‘마누라 죽이기’(1994, 강우석 감독) ‘돈을 갖고 튀어라’(1995, 김상진 감독) ‘총잡이’(1996, 김의석 감독) ‘똑바로 살아라’(1997, 이상우 감독) 등에서 박중훈은 발군의 코믹연기를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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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한국 코미디영화에서의 박중훈은 거의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렇다고 박중훈이 코미디영화에서만 그의 진가를 발휘한 것은 아닙니다. 한국영화계에 이른바 리얼리즘 영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90년대,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의 시각을 담아내던 사회성 소재의 영화들에서도 그는 필요충분아우라를 발산했습니다.

칠수와 만수’(1988, 박광수 감독)를 비롯한 그들도 우리처럼’(1990, 박광수 감독) ‘우묵배미의 사랑’(1990, 장선우 감독) ‘게임의 법칙’(1994, 장현수 감독) ‘깡패수업’(1996, 김상진 감독)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이명세 감독) 등이 그것입니다.

이 시절, 박중훈의 연기 스펙트럼은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넓었습니다. 그를 필요로 하는 영화 안에서 천의 얼굴을 그야말로 자유자재로 그려냈습니다. 코미디면 코미디, 리얼리즘이면 리얼리즘, 멜로면 멜로 등 작품과 감독의 요구를 척척 맞춰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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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박중훈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씌어졌다.

  

이른바 박중훈의 전성시절인 19978월 개봉된 할렐루야’(신승수 감독) 역시 박중훈의 슬랩스틱 코믹 연기가 없었더라면 도저히 만들어질 수 없었던 영화였습니다. 박중훈의, 박중훈에 의한, 박중훈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었을 정도입니다.

김영찬 작가의 시나리오도 애초부터 박중훈의 원맨쇼를 염두에 두고 씌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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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 영화 연출에 일가견을 지닌 신승수 감독(오른쪽)도 '할렐루야'에서는 거의 전적으로 박중훈의 개인기에 의지했다.

  

사기전과 5범의 주인공 장덕건(박중훈)이 출소 후 우연히 교통사고를 목격하게 되는데, 피해자를 병원응급실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의 시계와 지갑을 슬쩍 훔칩니다. 피해자는 개척교회 목사였으며, 그의 지갑에는 1억원의 개척교회 지원금을 지급하겠다는 대형교회 목사의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사기꾼 양덕건은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피해자 목사로 위장하여 대형교회를 찾아가 1억원의 돈을 받아낼 궁리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편지를 보낸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는 보름간의 외국출장 중인 데다, 담임목사를 대신하는 부목사(김일우)는 목사의 분위기라고는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양덕건의 존재를 의심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회의 장로들은 담임목사의 부재 중인 보름동안 목회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합니다. 목사는커녕 교회라고는 문턱도 넘어보지 않았던 양덕건으로서는 이만저만한 난관이 아닙니다.

하지만 1억원이라는 돈이 거의 손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양덕건은 사기꾼 동팔(이경영)과 사이비 교주(최종원)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좌충우돌, 엉터리 설교까지 하는 등 가짜목사 노릇을 강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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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교주(최종원, 오른쪽)에게 가짜기적 연출을 '한 수' 배우는 가짜목사 양덕건.(박중훈,왼쪽)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꾼 양덕건의 해프닝을 중심으로 펼쳐집니다. 바꿔말하면 박중훈의 개인기에 철저하게 기대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박중훈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모든 걸 재미있게 해냈습니다.

연출을 맡은 신승수 감독도 코미디 영화에는 나름 일가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몬트리올국제영화제 본선진출작이었던 수탉’(1990)을 비롯해 아래층 여자와 윗층 남자’(1992) ‘가슴달린 남자’(1993) ‘아찌 아빠’(1995) 등의 코미디 영화를 찍었으니까요.


80~90년대 한국영화계를 이끌던 이장호 감독과 배창호 감독의 조감독 출신으로 데뷔작인 장사의 꿈’(1985)을 통해서는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을 만큼 연출 역량 역시 인정받고 있던 감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신 감독은 박중훈의 개인기에 전적으로 의지했습니다. 매 씬, 매 커트 마다 박중훈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분위기가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대부분 박중훈의 연기 감정을 따랐습니다.

실제로 카메라 앞에서 박중훈이 펼쳐내는 슬랩스틱 코믹 연기는 늘 신 감독의 바람을 넘어섰습니다. 능글맞은 표정과 과장된 몸 연기로 영화 전체를 휘감았습니다.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온 관객들도 박중훈의 원맨쇼를 한껏 즐겼습니다. 바람난 남편 때문에 상담하러 온 성도와 상담하던 도중 , 미치겠네라면서 담배를 피워물거나, 장로(국정환)의 망나니 아들(차태현)을 훈계한답시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마구 패는 모습, 친구 동팔을 이용해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가짜기적을 연출하는 대목 등에서는 극장 안이 웃음바다로 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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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살롱 장면에 등장하는 화려한 카메오들. 왼쪽부터 성현아, 박철, 이휘재, 최지우.

  

할렐루야는 마이클 잭슨의 내한공연을 성사시켰던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의 첫 번째 제작영화였습니다. 정태원 대표는 그동안 짐 캐리 주연의 마스크’(1994)덤 앤 더머’(1995) 등의 코미디영화를 수입하면서 코미디 영화의 제작을 꿈꾸다가 할렐루야로 그 뜻을 이루게 된 거였지요.

할렐루야에는 특히 정 대표의 마당발 인맥이 빛을 발했습니다

박중훈 이경영 최종원 등 주요 배우 외에 조연, 단역, 카메오 등으로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지는 개척교회 목사 역에는 정 대표의 친구인 이재룡이 잠깐 나와 우정을 과시했습니다.

양덕건이 짝사랑하는 룸살롱의 아가씨로는 성현아, 이 룸살롱에서 술마시던 도중 성현아에게 집적거리다가 양덕건에게 봉변당하는 손님으로는 박철이 특별출연했습니다. 그리고 룸살롱에서 함께 등장하는 카메오 중에는 마담역의 최지우, 여장남자 트렌스젠더 역의 개그맨 이휘재도 있었습니다.

깨알 웃음을 준 이휘재 외에도 개그맨들이 많이 출연한 것도 이채를 띠었습니다. 이재포가 길거리 야바위꾼으로, 육교 위에서 구걸하는 걸인 역으로는 이동수, 영화의 마지막 반전에 등장하는 스님 역으로는 조춘이 각각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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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 개척교회 지원금 편지를 들고 나타난 양덕건을 두고 부목사(故김일우,왼쪽)와 장로(故국정환, 오른쪽)간에 서로 의견이 엇갈린다.

  

영화 초반 소매치기라도 해볼 요량으로 성당의 미사에 참석해서 소매치기 대상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가톨릭신자로 등장하는 홍진경, 그리고 지하철에서 소매치기하려던 양덕건을 오히려 되치기하는 소매치기로는 이혜영(여성 듀오 코코의 멤버)이 나왔습니다. 이혜영은 박중훈과 영화 꼬치치는 남자’(1995)에서 이미 연기호흡을 맞췄던 적이 있었습니다.

박중훈에게 실컷 얻어터지는 장로 아들 역의 차태현은 할렐루야가 데뷔작이었는데, 훗날 영화 투 가이즈’(2004, 박헌수 감독)에서도 다시 박중훈에게 얻어터지는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장로가 탄식하면서 맨날 고소영처럼 탤런트 되겠다는 철없는 딸입니다면서 소개하는 딸로는 실제 고소영이 출연해 웃음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처럼 숱한 화제를 낳으며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뻔한 이야기의 전개와 결말은 다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물론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이뤄냈기에 1997년 여름철 극장가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로 기록됐습니다. 40만 명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했으니까, 첫 제작 영화였던 태원엔터테인먼트로서도 의미가 있었던 셈입니다.


박중훈은 얼마전,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출연해온 40여편의 영화 중 기억에 남는 영화로 인정 사정 볼 것 없다’ ‘내 깡패 같은 애인’ ‘할렐루야등 세 편을 꼽았는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쓰이는영화로 할렐루야를 지목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이유 역시 요즘은 그런 슬랩스틱 코미디영화가 안나와서 그렇다는 생각을 밝혔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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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의 촬영현장. 신승수 감독(가운데, 모자 쓴)이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촬영장면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