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세의 무비스토리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101번째 프로포즈`

기사입력 [2019-04-24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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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닫힌 내 마음에 문을 열어준 그대는

숨쉬는 것마저도 힘겹게만 느꼈던

지난 날들의 긴장에서 날 깨워주었지

! 뒤돌아보면 아픈 기억이

아직 눈물로 남아있지만

내게로 다가와 Say Yes 너만을 사랑해 Say Yes

그냥 이렇게 내 곁에 머물러 줄 수 있다면

그대 안에 내가 Say Yes 내가 그대 안에 Say Yes

외롭던 지난 날을 이젠 함께 나눌 거야

 

1993년 여름이 시작되던 6월 중순, 개봉된 영화 ‘101번째 프러포즈’(오석근 감독)의 주제가 세이 예스(Say Yes)’의 노랫말입니다. 문성근과 김희애 주연의 이 영화는 1991년 여름철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후지TV12부작 미니시리즈를 리메이크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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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지TV의 인기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영화 '101번째 프러포즈'의 남녀 주인공 문성근과 김희애.

  

이 주제가는 무엇보다도 영화의 여주인공 김희애가 직접 불러 화제를 낳았습니다

당시 20대 중반의 김희애는 조용원 전인화 등과 함께 떠오르는 샛별 3인방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을 때였는데, 특히 그녀는 뛰어난 가창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영화보다 2년여 전 쯤에 발표된 나를 잊지 말아요’(전영록 작사작곡)KBS인기가요 프로그램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여기에다 1992년 안방극장의 최고 인기 드라마였던 MBC TV아들과 딸에서 후남역으로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단박에 사로잡으며 톱스타로 막 발돋움하고 있었습니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박힌 한 가정에서 딸이 겪는 좌절과 고통, 그리고 성공을 다룬 이 드라마에서 후남이는 단연 압도적 주인공이었습니다. 후남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얼마나 뜨거웠으면 원래의 대본과 달리 후남이의 결말을 바꿨겠습니까. 결국 아들과 딸은 어려움을 딛고 당당하게 대학에 진학하는 후남이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지요.

후남은 이름 자체만으로 당대의 아이콘이었는데, 김희애는 이미 라디오방송 DJ로서의 재능도 한껏 뽐내고 있었던 터라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그야말로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야에서와는 달리 유독 영화계에서는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않던 그녀가 오랜만에 ‘101번째 프러포즈의 출연을 결정한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지요. 사실 그녀는 하이틴 시절부터 연기활동을 해오면서 대학시절에 출연한 영화도 있었습니다. ‘내 사랑 짱구’(1985, 유진선 감독)라는 영화였는데, 어쩐 일인지 이 작품 이후에는 거의 영화에 출연한 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내 사랑 짱구에서의 작업이 그녀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기억으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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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데뷔한 이후 주로 무겁고 진지한 지식인 캐릭터를 연기해오던 문성근(오른쪽)은 '101번째 프러포즈'에서 지고지순한 사랑에 올인하는 순정남의 캐릭터를 선보였다. 김희애(왼쪽)도 오랫만의 스크린나들이에서 열연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아무튼 이러한 배경에서 ‘101번째 프러포즈에 출연을 결심한 것이었으니 영화와 방송 관계자들의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었지요. 특히 일본 방송드라마 사상 최고의 시청률(36.7%)을 기록하며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작품의 리메이크인데다가 드라마의 주제가였던 차게 앤 아스카의 세이 예스’(Say Yes)를 한국어로 개사하여 그녀가 직접 부르기까지 했으니까요.

드라마 주제가 세이 예스는 일본에서 빅히트하여 오리콘 차트의 위클리 싱글차트에서 무려 13주간 1위를 기록했습니다. 요즘이야 방송과 통신의 융복합으로 콘텐츠에 국경이라는 의미가 사라졌지만 당시만 해도 일본에서 유행하는 방송이나 음악 등은 부산 인근의 지역까지 시청취권에 들었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선풍이 현해탄 건너 한국에도 심심치 않게 알려지곤 했습니다.

차게 앤 아스카의 세이 예스와 일본 TV드라마 ‘101번째 프러포즈도 이렇게 하여 부산 인근 지역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었지요. ‘101번째 프러포즈가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뉴스도 부산지역의 대중에게 먼저 전파되었습니다.


‘101번째 프러포즈의 리메이크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하는 제작사(신씨네)에서는 연출을 오석근 감독에게 맡겼습니다. 지금(2019)은 영화진흥위원회의 위워장이지만 당시 오석근 감독은 이명세 감독의 조감독으로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첫 사랑’(1993)의 탄생에 일조하는 등 연출역량을 인정받고 있었지요.

비록 연출데뷔작인 네멋대로 해라’(1989)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실사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하는 시도라든가 16mm필름으로 촬영하여 35mm로 블로우업하는 등의 실험성을 높이 평가받던 감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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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번째 선을 통해 만난 지원(김희애,오른쪽)이 자신에게 과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는 영섭(문성근,왼쪽).

  

리메이크 영화 ‘101번째 프러포즈는 일본 TV드라마와 내용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혹시 의도적인 연출인가 싶을 정도로 흡사했습니다. 일본 TV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을 울렸던 유명 대사까지도 그대로 똑같이 옮겨왔으니까요.

99번이나 중매를 봤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은 노총각 영섭(문성근)100번째로 선을 본 첼리스트 지원(김희애)을 향해 온 마음을 다해 구애하는데, 진심어린 고백 도중 달려오는 트럭 앞으로 뛰어드는 장면이 그것입니다.

질주해오던 트럭이 영섭을 덮칠 듯한 그 순간, 아슬아슬하게 트럭이 멈춰서지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거의 넋이 나간 지원에게 영섭이 절규합니다.

, 죽지 않아요! 이렇게 살아있잖아요. 지원씨가 날 도와준다면 난 죽지 않아요!”

정말이지 일본 TV드라마와 똑같았습니다. 조금 과장하면 카메라 앵글까지도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토록 철저하게 일본 TV드라마와 똑같이 찍어내려고 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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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번째 프러포즈'의 연출을 맡은 오석근 감독(왼쪽)과 여주인공 김희애(오른쪽).

  

영화 ‘101번째 프러포즈의 제작 프로듀서는 훗날 한국영화 제작의 산실이 되었던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였습니다

문성근과 김희애의 캐스팅을 이끌어낸 주역이었지요. 차대표는 PC통신망 하이텔과 제휴하여 리메이크영화의 남녀 주인공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남녀 각각 2위에 오른 문성근과 김희애를 동반 캐스팅의 목표로 세웠던 겁니다.

캐스팅을 위한 설득작업이 101번째 프러포즈 같았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왔을 만큼 애를 쓴 끝에 캐스팅이 확정되자 주요 일간지에도 인기 급상승 문성근 김희애 영화 통해 콤비라는 타이틀의 기사가 실렸을 정도로 비상한 관심을 모았습니다.


‘101번째 프러포즈캐스팅 직전의 TV드라마 아들과 딸의 시청률이 무려 61.1%였으니, ‘아들과 딸후남이 다음 작품으로 뭘 하는지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급등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실제로 김희애는 ‘101번째 프러포즈에서 호연을 펼쳤습니다. ‘후남의 팬들 뿐 아니라 일반 관객에게도 약혼자와 사별한 첼리스트 지원의 캐릭터가 상당한 공감을 안겨주었습니다. 영화 후반부, 옛사랑(약혼자)에 대한 기억보다 더 소중하고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영섭(문성근)에게로 달려가는 장면에서는 박수가 터져나오기도 했으니까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해 연말의 여러 영화상 시상식에서 아주 근소한 차이로 여우주연상 수상에는 실패했다는 사실입니다. “공동수상이 거론되었다고 했던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였을까요. 김희애는 또다시 한동안 영화계 쪽으로 시선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101번째 프러포즈이후 무려 21년이나 지난 뒤에서야 우아한 거짓말’(2014, 이한 감독)로 스크린에 컴백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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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2019년)은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인 '101번째 프러포즈'의 오석근 감독.

  

한편 문성근도 그들도 우리처럼’(1990, 박광수 감독)베를린 리포트’(1991,박광수 감독), ‘경마장 가는 길’(1992, 장선우 감독) 등을 통해 주로 무겁고 진지한 지식인 캐릭터를 연기해오던 것과 달리 처음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에 올인하는 순정남의 캐릭터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28 가르마의 헤어스타일과 검은 색 뿔테 안경 등 분장과 메이크업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01번째 프러포즈연기 릴랙스의 계기를 마련했던 듯 그후에는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 장선우 감독)세상 밖으로’(1994, 여균동 감독) 등의 영화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구축하며 연기영역을 확장시켰습니다.


‘101번째 프러포즈10여년이 지난 2006, SBS TV의 미니시리즈(연출 장태유)로도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영화의 주인공이었던 김희애와 문성근이 TV드라마의 두 주인공인 박선영과 이문식에게 성공적인 드라마가 되길 바란다며 공개적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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