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세의 무비스토리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올가미`

기사입력 [2019-03-19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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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616, 배우 윤소정이 별세했다는 소식이 소속사(뽀빠이엔터테인먼트)의 발표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평소 지병이 없었던 그녀가 갑작스런 패혈증으로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사인 또한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직 연기활동을 충분히 더 펼칠 수 있는 73세의 나이로 대중의 곁을 떠났다는 점이 가장 안타까왔지요. 원숙한 연기와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로 당당하게 무대에 서있던 그녀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녀는 당시 사전 제작된 JTBC드라마 엽기적인 그녀에서 자혜대비 역으로 열연을 펼치며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던 터여서 그 슬픔과 충격의 강도가 한층 더 컸습니다.

 

그녀의 별세 소식은 그녀의 첫 연기무대였던 연극계 뿐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녀가 많은 영화에 출연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지요.

 

조문을 위해 빈소를 찾은 몇몇 영화인들은 스크린에 투영되던 그녀의 연기를 그리워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들린 듯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던 스릴러 영화 올가미에서 보여준 그녀의 아우라를 한 마음으로 추억했습니다.

올가미를 연출했던 김성홍 감독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지요. 그는 그저 말없이 소주잔만 연신 기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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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에서 며느리 역을 연기했던 최지우는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그랬습니다. ‘올가미윤소정의 명연기로 회자된 영화였습니다


아들을 몹시 사랑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간에 아들을 두고 벌어지는, ‘고부(姑婦) 갈등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말이 고부 갈등이지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거의 전쟁 수준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캐릭터가 정상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병적인 집착의 소유자'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실제 영화 속에서 어머니는 아예 대놓고 아들을 남자로써 사랑한다는 걸 밝히기까지 합니다.

 

이 어머니 역할을 고 윤소정이 그야말로 섬뜩하고도 무시무시한 연기로 표현해냈던 거지요.

스크린 속 그녀의 시어머니 연기가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으면 올가미의 개봉 이후 한동안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홀어머니를 둔 아들과는 절대 결혼하지 않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였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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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에서 홀어머니를 둔 외아들로 열연한 박용우. 마마보이 캐릭터를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들었다. 

 

30년간 홀로 아들(박용우)을 키워온 진숙이라는 인물이 그녀에게 주어진 역할이었습니다. 

비록 오십대의 나이였지만 여전히 매력적인 그녀는 그러나 아들을 거의 병적으로 사랑합니다.

 

주말에 아들과 데이트하는 걸 낙으로 여기는 그녀는 어느 날 아들로부터 결혼할 여자(최지우)를 소개하겠다는 얘기를 듣게 됩니다.

청천벽력과도 소식에 충격을 받은 그녀는 아들과의 약속장소에 나가는 대신 집안의 화장대를 뒤엎고 거울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노합니다.

 

하지만 아들의 결혼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결국 결혼식 후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아들과 며느리를 맞이하며 신혼방을 꾸며놓았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며느리에게는 앞으로 우리 잘해보자며 살가운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렇지만 아들이 출근하고 난 뒤, 며느리와 둘만 있을 때면 금방이라도 죽일 것처럼 표독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귀가한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인자한 시어머니로 돌아오지요. 그리고 며느리의 기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시어머니는 한밤중에도 불쑥 아들과 며느리의 침실로 들어옵니다.

모자지간으로 보기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침대에 누운 아들과 낯 뜨거운 장난을 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들의 속옷을 직접 자신이 빨겠다면서 며느리한테서 빨랫감을 빼앗으며 며느리를 계단에서 밀어버리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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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의 '고부 갈등'과 그 고부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외아들의 모습을  사실감 있게 연기해낸 최지우와 박용우.

하지만 더 결정적인 장면은 샤워를 한다며 욕실로 들어가는 아들을 뒤따라 들어가 자신이 직접 다 큰 아들을 벌거벗겨 놓고 목욕까지 시켜주는 모습입니다.

며느리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하지만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며느리는 점점 더 엽기적으로 변하는 시어머니와 이를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아들로 인해 불안감과 공포감에 사로잡혀갑니다.

 

윤소정은 영화의 후반, 아들과 말다툼하던 끝에 실수로 아들을 죽이게 되자 실로 충격적인 대사를 던집니다


널 낳았다는 죄로 30년 동안... 널 좋아한단 말 한 번 못했어!”

 

이 장면으로 영화 올가미는 장르적 목표를 단박에 이뤄냈습니다. 그야말로 한 방의 장면이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던 관객들, 특히 여성관객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지요. 

영화의 마지막, 그녀는 한번 더 관객을 충격으로 내몰았습니다. 며느리를 지하실에 감금하고 온갖 고문을 하면서 내뱉은 한 마디.


너는 내 아들에게 사준 장난감에 불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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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 중 가장 결정적인 장면. 시어머니(윤소정)가 다 큰 아들(박용우)을 벌거벗겨 목욕시키는 이 장면 때문에 몇몇 여성 관객들은 '소름이 다 돋았다'며 고개를 가로젓기도 했다.

 

올가미에 앞서 손톱’(1996)을 통해 스릴러 장르의 연출 재능을 보여주었던 김성홍 감독은 또한번 자신의 연출 감각을 한껏 드러냈습니다.

여기에는 윤소정의 메쏘드 연기가 단단히 한 몫 했음은 물론입니다.

 

그녀는 독립 운동가이자 영화인이었던 윤봉춘 감독의 딸로 태어나 남편 오현경과 딸 오지혜 역시 모두 배우인, 이른바 연기자 가족으로도 널리 알려졌지요.

윤봉춘 감독은 3.1운동의 주역인 유관순 열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영화에 담아낸 주인공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일대기를 그린 무성영화 柳寬順’(1948)이 그것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 가족이 각자 출연 중인 작품에서의 연기를 놓고 서로 간에 아주 냉정하게 평가하는 토론문화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어머니의 기일을 맞은 딸 오지혜가 어느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나 엄마나 모두 서로 무섭게 모니터해준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할 정도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던 엄마가 너무 고마웠다고 회고했을 정도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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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 귀신소동' 해프닝을 낳았던 지하실 고문 장면, 시어머니(윤소정)가 지하실에 감금한 며느리(최지우)에게 삽을 내리치려는 순간, "위험해!"라는 정체불명의 여성 목소리가 현장녹음기사에 의해 녹음되었다. 실제로 이 목소리는 얼마 후 SBS TV이 '토요미스테리극장'에서 심층보도되기도 했다.

 

 

영화 올가미는 개봉되어 극장을 찾은 관객들로부터 제법 호응을 얻었습니다. 흥행 성적도 좋았는데, 여기에는 아마도 당시 가십으로 알려졌던, ‘귀신소동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적잖이 불러일으켰던 것으로 보입니다.

올가미 귀신소동이란 영화의 막바지 촬영 당시, 시어머니가 지하실에 며느리를 감금하고 고문하는 장면을 찍을 때 일어난 해프닝이었습니다.

 

윤소정이 최지우를 향해 삽으로 내려치려는 순간, 어디선가 위험해!”라고 외치는 정체불명의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는 겁니다.

당시 지하실 촬영 현장이 협소하여 두 명의 배우와 촬영감독 등 5명만 들어가 있는 상태에서 나온 소리인 데다, 현장녹음기사가 그 소리를 녹음기에 담아냈기 때문에 당시 영화 촬영에 함께 했던 스태프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된 것이지요.

 

지하실 장면의 촬영이 끝난 후, “위험해!”라고 녹음된 소리를 들려주자 최지우는 거의 혼비백산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최지우 뿐이 아니었습니다. 촬영현장의 여성스태프들도 그 후에는 한동안 지하실 등 컴컴한 공간에서의 작업을 기피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해프닝은 얼마 후 SBS TV에서 방영되던 토요미스테리극장에서도 심층적으로 보도되어 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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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가미'의 개봉 당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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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에서 며느리 역을 연기했던 최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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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의 연출을 맡은 김성홍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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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미'의 제작발표회 장면(맨 위).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박용우 윤소정 최지우(가운데). 그리고 김성홍 감독이 함께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