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세의 무비스토리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마리아와 여인숙`

기사입력 [2018-02-0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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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104, 35회 대종상영화제가 전라북도 무주 덕유산리조트에서 열렸습니다. 대종상은 국내에서 열리는 여러 영화상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영화상인데요, 언제부터인가 수상결과와 진행을 두고 늘 잡음이 끊이지 않아왔습니다. 대개는 대종상을 주관하는 영화인협회(현재는 영화인총연합회)의 내부 알력으로 빚어지는 잡음이었지요.

 

때문에 영화계에서는 대종상에 대한 쇄신의 목소리가 상존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쇄신의 염원을 담아 영화제 후원사인 쌍방울개발()의 덕유산리조트에서 영화제를 치르게 됐습니다. 개막식부터 시상식까지 일주일간에 걸친 행사를 마련했습니다만 수상작 선정의 공정성을 어느 정도 이뤘다는 것 말고는 여러 가지로 미흡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영화팬들을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습니다. 무주라는 지리적인 한계도 있었지만 영화제 프로그램이나 홍보 면에서 많이 부족했습니다. 특히 시상식 당일, 오전부터 내리는 비로 인해 3천석의 의자를 깔아놓은 시상식장에는 겨우 1~2백명 정도 밖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당시 KBS TV의 생중계로 보여지는 시상식 장면은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악천후 상황에서는 안타까운 실수와 해프닝도 여러차례 빚어졌습니다.

 

오늘 컬럼에서 소개하려는 영화 마리아와 여인숙’(1997, 선우완 감독), TV자막에 미아리와 여인숙으로 소개돼 시청자들의 비웃음을 샀지요. 여인숙이라는 이미지가 아마도 집창촌 미아리를 연상케 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만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치명적이었습니다. 또 이날 시상식에서 남녀주연상(한석규, 심혜진)을 수상한 초록 물고기’(1997, 이창동 감독)초록 불고기라는 자막으로 소개돼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마리아와 여인숙은 그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여주인공이었던 심혜진이 그나마 초록물고기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해서 체면치레(?)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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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여인숙'에서 남자 주인공 기욱역을 연기한 신현준.

  

사실 마리아와 여인숙의 애초 기획의도는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은유와 인간성 상실이라는 주제를 스릴러적 기법과 에로틱 무드로 그려내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선우완 감독은 장선우 감독과 함께 적나라하게 현실을 풍자한 영화 서울예수’(1986)를 공동연출하는 등으로 주목을 받아온 감독이었습니다.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바닷가의 여인숙으로 흘러들어온 여인이 여인숙을 운영하는 두 형제 사이에 질투심을 불러일으켜 파멸로 몰아넣고, 자신이 여인숙을 차지한다는 기둥 줄거리를 통해 70년대말 10.26으로부터 80년대, 90년대에 이르는 시국에 대한 냉소까지 담아보겠다는 게 선우완 감독의 연출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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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와 여인숙'에서 명자(심혜진,오른쪽)는 기욱(신현준, 왼쪽)을 끈질기게 유혹한다.

  

영화의 무대는 충남 태안반도에 이어진 안면도의 끝자락 장산포 해수욕장으로 삼았습니다. 장산포는 워낙 외딴 곳이어서 서해안의 여느 해수욕장들과 달리 백사장과 바닷물이 흰 빛과 푸른 빛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2층짜리 파도 여인숙세트를 짓고 19972월부터 5월까지 3개월 넘게 촬영했습니다. 이런 영화 촬영팀이 진을 치게 되면 호기심어린 구경꾼들로 북적대는 게 보통입니다만 워낙 외딴 바닷가 마을인지라 촬영장을 기웃거리는 주민들도 별로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영화 속에 펼쳐지는 10여년의 이야기를 찍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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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안면도의 장산포 해수욕장에 지어놓은 여인숙 세트 앞에서 촬영 중인 신현준과 심혜진. 

  

피서지 바닷가에서 여인숙을 하며 살아가는 기태(김상중)와 기욱(신현준) 형제. 기태는 어린 시절 다친 이후 성장이 멈춰진 상태입니다. 사람없는 어느 겨울날, 여인숙에 찾아든 명자(심혜진)와 그녀의 딸 마리아(서지희)가 찾아듭니다.

기태는 마리아는 금세 친해지면서 명자에게도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명자는 오히려 기욱에게 추파를 던집니다. 기욱 역시 명자의 그러한 유혹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둘의 미묘한 감정을 알 리 없는 기태는 점점 더 적극적으로 명자에게 사랑을 표시하게 되면서 세 사람의 갈등이 커져갑니다.

하지만 기욱은 기태를 위해서 자신의 마음을 숨긴 채, 기태와 명자를 연결시켜 줍니다. 그리고 명자는 이러한 기욱을 비웃기라도 하듯 노골적으로 여인숙의 안주인 행세를 합니다. 외견상으로 기태와 명자, 마리아가 행복해 보이는 가운데, 기욱은 명자를 향한 욕정으로 더욱 괴로워 합니다.

급기야 폭풍우가 몰아치는 어느 여름날 밤, 기욱은 명자의 저돌적인 유혹에 무너져 내립니다. 형수와의 섹스, 용납될 수 없는 선을 넘게 된 겁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 장면을 목격한 기태는 엄청난 배신감에 광분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힌 기욱은 스스로 죽음을 택합니다.

기욱의 죽음 이후, 여인숙에는 명자의 전남편 태수(이경영)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마치 예정된 수순이었던 것처럼 태수와 명자가 여인숙을 가로채고, 기태를 내쫓습니다. ‘파도 여인숙파라다이스라는 간판과 함께 매음굴로 바뀌고 맙니다.

그리고 10여 년쯤 지난 후, 18세 소녀로 성장한 마리아(이정현)가 애인(박상민)과 함께 매음굴로 전락한 여인숙을 찾아옵니다. 어려서부터 명자와 태수의 음모를 모두 지켜봤던 마리아는 다시 그들로부터 여인숙을 빼앗으려는 음모를 꾸미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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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준 심혜진 김상중(왼쪽부터)의 포즈. 세 인물의 갈등이 영화의 중심 축이다.

  

선우완 감독은 바닷가의 작은 여인숙이라는 공간은 인간의 욕망과 이성이 시험당하는 우리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강변했습니다만 사실 영화에서는 욕망에 사로잡힌 섹스만 난무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영화 개봉에 앞서 공개된 포스터에서도 여주인공 심혜진이 관능적인 눈빛으로 남자주인공 신현준의 벗은 상반신을 뒤에서 끌어안은 포즈를 앞세워 에로티시즘을 팔았습니다’. 메인카피 또한 그곳에선 언제나 밤꽃 향기가 가득했다고 강조했지요. 이 정도면 확실한 에로티시즘의 표방이지요.

 

심혜진이 마리아와 여인숙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을 때, 매스컴의 시선도 집중됐습니다. 당시 심혜진의 위상은 한국영화 캐스팅 1순위였기 때문입니다. ‘결혼이야기’(1992, 김의석 감독)로 메가톤급 히트를 기록한 이후, ‘그 섬에 가고 싶다’(1993, 박광수 감독), ‘세상 밖으로’(1994, 여균동 감독), ‘박봉곤 가출사건’(1995, 김태균 감독), ‘은행나무 침대’(1995, 강제규 감독), ‘초록 물고기’(1997, 이창동 감독) 등으로 연속해서 큰 성취를 이루고 있었지요. 대종상, 청룡영화상, 백상예술대상 등 국내의 모든 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었습니다. 특히 은행나무 침대에서는 이미 신현준과 호흡을 맞췄던 터라 마리아와 여인숙에 대한 영화팬들의 기대는 높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애초의 영화기획 의도를 살리지 못했으면 철저하게 에로티시즘으로 승부해서 흥행이라도 노렸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도 못한 거죠. 사실 1997년 추석 시즌에 개봉된 영화 중에서 에로티시즘으로는 -노는 계집을 따라갈 영화가 없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피카디리극장에서는 접속’, 명보극장과 허리우드극장에서는 -노는 계집’, 단성사와 중앙극장에서는 블랙잭’, 스카라극장에서는 현상수배’, 그리고 서울극장에서는 마리아와 여인숙이 각각 개봉됐습니다만 접속-노는 계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흥행에 참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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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안면도 장산포에 지은 여인숙 세트 앞에서 포즈 취하고 있는 신현준, 심혜진, 김상중.(왼쪽부터)

  

마리아와 여인숙에서 가장 속상했을 배우는 아마도 영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하는 이정현이었을 겁니다. 이미 1년 전에 꽃잎’(1996, 장선우 감독)에서 깜짝 놀랄만한 연기로 시선을 끌었지만 3’이어서 1년여 동안 대입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장선우 감독의 절친인 선우완 감독의 요청을 받고 악녀캐릭터 변신에 대한 욕심으로 덤벼들었던 것인데, 영화가 그렇게 실패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그래도 다행히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진학에는 성공했으니, 그것으로 위안을 삼았겠지요. 그리고 그 후에는 잘 알려진 것처럼 계속 영화와 방송, 또 뛰어난 가수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니까요.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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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완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