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토리

[이창세의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기사입력 [2017-10-24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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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누구나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하는 시대입니다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일반 국민의 해외여행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공무원의 출장이나 학생들의 유학 등 특별한 목적이 있을 경우,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여권을 발급받아서 출국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화, 개방화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정부가 해외여행 자유화를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891월부터 일반국민의 해외여행 자유화가 전면적으로 시행되었습니다.

외국에서의 촬영이 필요한 영화제작팀 역시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에는 일반 국민들처럼 심사를 거쳐야 했습니다. 심사과정이 까다롭고 번거롭다는 이유 때문에 더러는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해외촬영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한국영화의 해외촬영 사례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로덕션으로 회자되고 있는 깊고 푸른 밤’(1985, 배창호 감독)의 경우에도 복잡한 절차를 거쳤습니다. 주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해외촬영 목적의 비자를 발급받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습니다. 배창호 감독과 안성기 등 주요 배우들은 별 문제없이 비자를 받았지만 제작스태프들의 비자 발급은 까다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당초 비자발급을 요청했던 제작부의 인원이 줄어들기까지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미국 현지에서 임시 스태프를 구해야 했습니다. 또 미국 현지의 촬영 허가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촬영 허가 없이 도둑촬영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완성된 깊고 푸른 밤이 크게 성공하지 않았더라면 그 후유증도 만만찮았을 겁니다.

아무튼 이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지나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되면서 한국영화의 해외촬영도 빈번해졌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장길수 감독)를 시작으로 물 위를 걷는 여자’(1990, 박철수 감독) ‘맨발에서 벤츠까지’(1991, 이성수 감독)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1991, 장길수 감독) ‘사의 찬미’(1991, 김호선 감독) ‘명자 아끼코 쏘냐’(1992, 이장호 감독) ‘땅 끝에 선 연인’(1992, 이석기 감독) 등의 영화들이 해외촬영을 다녀왔습니다. 특히 장길수 감독과 이석기 감독은 여러차례 해외촬영을 경험하면서 나름의 노하우를 축적, ‘해외촬영의 대가(大家)‘ 소릴 들을 정도였습니다. 이 지면을 통해 추억해보려는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1991) 역시 이석기 감독이 미국 올로케이션으로 찍은 작품입니다. 촬영 연대기로 보면 땅 끝에 선 연인보다 1년쯤 앞서 찍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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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길 작가의 원작소설을 이석기 감독이 이혜숙(왼쪽)과 손창민(오른쪽)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여, 미국 올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의 원작자는 정치인이자 작가인 김한길입니다. 1981년 미국으로 건너간 김한길 작가는 미주 한국일보 기자로 재직하는 등 자신이 겪었던 미국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이 소설을 썼습니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과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이 빚어낸 재미동포의 꿈과 좌절을 담고 있는데, 아마도 작가는 통일사회당 당수를 지내던 부친(김철)1980년 강제해산 아픔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원작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 자신인 듯한 미주교포신문 기자를 내세워, 미국에 흘러들어오는 특권층 자제들의 탈선을 취재하는 인물로 설정해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선지 원작소설 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김민수(박찬환)는 주인공 박준(손창민)을 취재하면서 시종 애증의 갈등으로 얼키고설킵니다.

 

술과 도박과 엽색으로 지새우는 전직 고관 2세 박준(손창민)은 서울의 환락가를 주름잡다가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으로 아버지가 실각하자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인물입니다. 호화롭고 방탕한 생활에 익숙한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몰라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의 카지노에서 마약과 도박으로 인생을 소비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국신문 기자 김민수(박찬환)는 미국으로 흘러들어온 한국의 특권층 자제들의 탈선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박준의 행적을 알게 됩니다. 사실은 김민수와 박준은 서울에서부터 아는 사이입니다. 김민수의 부친이 정치활동 중 검거되었을 때, 당시 실세였던 박준 부친의 도움을 얻기 위해 박준에게 간청했다가 거절당한 인연이 있었던 겁니다.

한편 샌프란시스코 클럽에서 일하는 우희(이혜숙)는 과거 한국에서도 여대생 아르바이트로 룸살롱에 나가 일할 때, 황태자처럼 군림하던 박준과 어울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클럽의 총기사건으로 인해 박준이 정보기관의 감시와 추적을 받게 되자 그에게 연민을 느낍니다. 이국의 삶에 지친 박준은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큰 게임을 하겠다며 나서는데, 우희도 같이 따라나섭니다. 가는 도중 자동차 고장으로 사막에 잠시 머물게 되면서 박준은 우희의 과거사를 듣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안아주며 사랑의 감정에 빠져듭니다. 우희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준 박준에게서 생애 처음으로 진심어린 사랑을 느낍니다.

하지만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박준은 카지노에서 가진 돈을 다 잃습니다. 마지막으로 우희가 준 돈으로 베팅에 성공하여 큰 돈을 따지만 결국 그는 자신을 주체하지 못한 채, 우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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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카지노로 떠나 큰 게임을 벌이려는 박준(손창민,왼쪽)을 우희(이혜숙, 오른쪽)도 따라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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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희(이혜숙) 역시 한국에서 여대생 아르바이트로 룸살롱을 나가야했던 아픈 과거사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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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고관2세 박준(손창민)은 미국에 흘러들어와 마약과 도박으로 인생을 소비하고 지내는데,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정보기관의 감시와 추적의 대상이다. 

   

이 영화에서는 특히 카지노 장면의 촬영에 많은 공을 들여야 했습니다. 도박과 마약에 빠져있는 주인공 박준(손창민)의 캐릭터를 실감나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카지노 전체의 분위기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라스베가스 호텔측의 카지노 촬영을 위한 조건이 꽤 까다로웠습니다. 카지노 안에 있는 프로 딜러의 모습은 절대로 찍을 수 없다는 것과 촬영을 위해서 펼쳐놓은 들의 액수에 해당하는 현금을 반드시 보관시켜야 한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그래서 촬영내내 제작스태프 중 한 명은 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만 관리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카지노 촬영은 의 분실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고, 또 촬영 막바지에는 프로 딜러 한 명이 출연을 자청해주기까지 했습니다. .

그런데, 원작소설의 제목이기도 하고, 영화 제목이기도 한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작가 김한길은 제목에 대해서 사막을 걷는 낙타의 눈은 늘 젖어 있다면서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낙타의 젖은 눈처럼 각자 문제의식과 슬픔을 안고 살아간다는 의미라고 밝혔습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박준(손창민)은 우희(이혜숙)과 나란히 사막에 누워 얘기합니다. “, 말이야. 가끔씩 낙타를 생각해.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가는 낙타 말이야.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울지도 않고, 곁눈질도 하지 않고, 그냥 타박타박 걸어가는 거야. 오아시스가 나타나도 낙타는 열광하지 않아. 물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시고, 그냥 또 가는 거야.”

여기에 우희의 자그마한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우리는 너무 우리 자신만 생각하며 살아왔어요. 이 세상에서 무언가 서로 줄 수 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멋질까요?”

다분히 철학적인 선문답 같습니다. 이석기 감독은 위태롭지만 불꽃 같은 사랑을 그려내는 게 연출의 목표라고 했습니다만 이들이 벌이는 사랑놀음은 억지스러운 느낌을 갖게 합니다. 황량한 이국에서 맞닥뜨린 두 남녀에게 허무의 그림자를 짙게 드리워놓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왜 이들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지 그 필연성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는 흥행결과(16만 명)도 나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여주인공 우희 역의 이혜숙과 제작사(화진영화)의 한기은 대표가 이 영화의 미국 로케이션 동안 사랑에 빠져 장래를 약속하게 됐던 겁니다. 원래 두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서로 알던 사이였습니다. 한기은 대표가 이혜숙의 친구 오빠였거든요.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저 친구의 오빠로만 생각해왔던 것인데, 머나먼 이국땅의 촬영현장에서 함께 고생하는 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이 오빠 동생에서 연인의 관계로 발전한 겁니다. 그런데, 미국 촬영하는 동안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이 따로 데이트를 하거나 특별한 사이로 발전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하네요. 감쪽같은 연애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영화 개봉(19918) 이듬해인 19924월 결혼식을 올렸으며, 딸 하나를 두고 지금까지 원앙금슬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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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카지노의 촬영에는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촬영에 사용하는 '칩' 액수에 해당하는 현금을 반드시 보관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스태프 중 한 명은 아예 '칩' 전담을 맡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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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의 촬영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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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가져간 돈을 모두 잃은 박준(손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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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고장으로 사막에 머물게 된 박준(손창민)이 사막을 헤매고 다니며 빠져나갈 방도를 찾아보는 장면.  손창민은 미국 촬영 중 이 사막에서의 촬영이 가장 힘들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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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손창민)에게 생애 처음으로 진심어린 사랑을 느끼게 된 우희(이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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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고장으로 잠시 사막에 머물게 된 박준(손창민)과 우희(이혜숙)이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에로틱 무드의 촬영장면. 이 장면이 영화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의 '메인 컷'으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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