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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헤어 드레서`

기사입력 [2018-03-2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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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의 여름은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하기도 끔찍한, 한국사회 현대사의 비극적 참사로 손꼽히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일어났던 때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역사상 최악의 건축물 붕괴사고로 일컬어진 이 사고는 무엇보다도 강남 한복판에 자리잡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려한 백화점이었다는 점에서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게다가 이 화려한 백화점 붕괴의 원인이 부실공사였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국민들을 경악시켰지요.

사고가 일어난 629일부터 7월 한달 내내 사망자와 실종자의 수습이 이어졌고, 극한 상황을 견뎌내고 십여 일만에 구조되는 생존자들의 뉴스도 전해졌습니다. 연일 TV화면을 통해 보여지는 사고현장의 처참한 모습은 그해 여름을 더욱 무덥고 짜증나게 했습니다.

 

그 끔찍했던 여름을 벗어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는 9월 추석 무렵, 국민들은 국민배우 안성기의 깜짝 가위춤이라는 파격변신과 마주했습니다. 배우의 천성이 천의 얼굴이기는 하지만 안성기의 현란한 가위춤 포즈는 국민들에게 잠시라도 악몽에서 깨어나는 각성효과를 주었습니다. ‘헤어드레서’(1995, 최진수 감독)라는 영화에서였습니다.

첨단 헤어 패션과 현란한 손놀림의 가위춤을 선보인 이 영화에서 안성기는 프랑스 유학파 미용가, 헤어드레서라는 이색적인 캐릭터 변신을 시도했습니다. 이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여러가닥으로 길게 땋은 꽁지머리 스타일을 설정하는가 하면, 현대무용가 안은미씨로부터 2개월 동안 현대무용을 접목한 가위춤을 전수받았습니다.

미국 할리우드 스타 탐 크루즈가 당구 도박사들의 세계를 그린 영화 칼라 오브 머니에서 당구선수를 연기하기 위해 당구큐대를 마치 창처럼 휘두르며 여러 가지 묘기를 보여준 것처럼 안성기 역시 다양한 안무동작으로 가위 돌리기 실력을 과시했습니다.

 

안성기는 영화 개봉에 앞서 제작발표회 형식의 프레스 컨퍼런스를 통해 2개월여에 걸쳐 연습한 가위춤 솜씨를 공개해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습니다. 미국 서부영화에서나 봤음직한 쌍권총 돌리는 포즈를, 권총이 아닌 쌍가위로 펼쳐보였던 겁니다. 양손에 가위를 쥐고 손가락에서 손가락으로 가위를 옮기면서 돌리는 등 자유자재로 가위를 다루는 실력을 한껏 과시하여 기자들의 탄성을 자아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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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드레서'에서 프랑스 유학파 미용가 앙리 박으로 열연한 안성기(왼쪽)와 방송사 분장사 역의 조은숙(오른쪽).

  

미용계의 큰 손 장마담(이혜영)은 경영하는 미용실에 앙리 박 헤어테크라는 새로운 간판을 올립니다. 프랑스 유학파로 알려진 앙리 박을 앞세워 미용업계를 장악하려는 시도입니다. 장마담의 기대에 부응하듯 앙리 박은 개업 첫 날부터 야수파로 명명된 새로운 헤어스타일을 선풍적으로 유행시킵니다.

그러나 앙리 박의 실체는 개털을 자르던 애완견 미용실(펫샵)의 조수였습니다. 워낙 손재주가 좋은 걸 눈여겨 본 장마담이 그를 스카웃, 신분 세탁을 한 거지요.

한편 장마담 미용실의 터주대감 미용사 이춘기(조형기)는 앙리 박 때문에 손님도 떨어지고, 공공연한 무시까지 당하자 앙리 박의 약점 캐기에 혈안이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앙리 박이 애완견 미용실의 조수였다는 전력을 우연히 알아내고 한 밑천 잡을 기회를 엿봅니다.

 

한편 앙리 박의 실상을 모르는 방송사에서는 앙리 박의 헤어쇼와 유행의 경향들을 야수파 신드롬이라는 사회적 현상들로 크게 포장해 보도합니다. 특히 앵커가 꿈인 이금주 아나운서(지수원)와 본부장을 노리는 국장(명계남)의 손에 의해 포장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헤어쇼를 취재하러 나온 이금주 아나운서를 보고 첫눈에 사모하게 된 앙리 박은 앵커 면접을 앞둔 그녀의 머리를 정성스럽게 다듬어줍니다. 그러나 본부장의 후광을 업은 후배에게 앵커 자리를 빼앗기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파격적인 헤어스타일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절망에 빠집니다.

 

이런 와중에 이춘기는 앙리 박과 장마담에게 전모를 폭로하겠다며 위협, 자신도 앙리 박처럼 포장되길 원한다는 뜻을 전합니다. 이에 장마담은 이춘기에게 육탄공세까지 감행하며 입막음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실체가 밝혀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힌 앙리 박은 당황한 나머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방송국 분장사(조은숙)의 머리를 다듬다가 그녀의 귀를 베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결국 앙리 박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앙리 박을 포장하려는 사람과 벗기려는 사람들 간의 치열한 암투가 펼쳐지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사가 그러하듯 이들의 싸움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흐지부지 됩니다. 단지 그 틈을 비집고 새롭게 포장을 꾀하는 무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됐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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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학파로 행세하는 앙리 박(안성기)은 패션너블한 외모와 현란한 가위춤으로 미용계를 장악한다. 

 

영화 헤어드레서안성기의 헤어테크, 98일에 오픈합니다라는 카피를 앞세웠습니다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위장신분의 미용사가 성공과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풍자극의 형태를 띠었습니다. 과거 한때 사회문제로 시끄러웠던 학벌이나 신분의 조작, 세탁 등에 대한 냉소의 시선을 최진수 감독은 일찌감치 헤어드레서를 통해 드러냈던 겁니다.

 

최진수 감독은 원래 광고인이었습니다. 해태그룹 계열의 광고회사 코래드에서 대우전자의 탱크주의‘ CF를 만들었던, 잘 나가는 CF감독이었지요. 선키스트 훼밀리 주스 등으로 여러차례 광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의 제작을 코래드가 직접 맡아 하면서 최감독에게 연출을 의뢰한 겁니다.

그래선지 헤어드레서에서는 여러곳에서 CF의 분위기가 물씬 납니다. 소재의 기발함이나 안성기와 조형기 등의 남성 미용사 캐릭터도 다분히 파격적인 설정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영화의 개봉 시점 또한 온 사회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의 후유증에서 겨우 막 벗어나던 시점이어서 안성기의 꽁지머리나 헤어드레서의 가위춤 등은 역설적으로 신선하게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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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박이 애완견 미용실 출신이라는 실체를 알아내고, 앙리 박과 장마담에게 자신의 신분 위장을 요구하는 이춘기 역의 조형기. 촬영에 앞서 분장하는 모습.

 

여주인공 이금주 아나운서 역의 지수원도 패션모델 출신이었습니다. 비리 경찰을 풍자한 영화 투캅스’(1993, 강우석 감독)에서 박중훈의 상대역으로 깜찍발랄한 연기를 보여준 여세를 몰아 단박에 주연을 꿰차고 사랑하기 좋은 날’(1995, 권칠인 감독)에서는 최민수와 공연한 데 이어, ‘헤어드레서에서는 국민배우 안성기의 지극정성의 사랑을 받는 이금주 아나운서로 공연을 하게 된 거죠.

 

영화 헤어드레서의 흥행 성적표는 보통이었습니다만 여주인공을 맡았던 지수원과 방송사 분장사로 조연급이었던 조은숙은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영화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 지수원은 헤어드레서를 끝내자마자 피아노가 있는 겨울’(1996, 조금환 감독)에서 강석우 오연수 등과 나란히 주연을 맡았으며, 조은숙은 오늘날의 홍상수 감독을 만들어준 영화 우물에 빠진 날’(1996)에 일약 주연으로 발탁되는 기회를 잡았지요.

 

다만 최진수 감독은 헤어드레서이후에는 더 이상 영화를 연출하지 않았습니다. 본업인 광고감독으로 돌아갔지요. 훗날 최 감독은 회사(코래드)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준 덕에 평소 꿈꿔왔던 영화연출 외도를 해봤다는 데 만족한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최 감독을 잘 아는 지인들은 그는 헤어드레서이후에도 계속 새로운 영화를 하고 싶어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영화연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귀띔합니다.

최진수 감독도 나는 영화가 좋다영화에 미친 사람인 모양입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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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을 앞두고 앙리 박으로 분장하는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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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드레서'의 주인공들. 왼쪽부터 지수원, 안성기, 조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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