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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극장] `1억명의 관객이 믿고 본 배우` 송강호

기사입력 [2018-02-2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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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에 한석규의 전성시대가 만개하던 19972, 영화팬들은 처음 보는 얼굴의 신인배우에게 시선을 빼앗겼습니다. 한국 리얼리즘영화의 대들보와도 이창동 감독의 데뷔작 초록 물고기에 출연한 송강호가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암흑가의 부조리하고 허무한 삶과 그 절망 속에서도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송강호는 일개 단역배우로 출연했습니다. 주먹과 칼로 세상을 살아가는 남자(문성근)와 세상을 사랑으로 느끼려는 여자(심혜진), 그리고 세상을 절망으로 살아가는 남자(한석규)가 펼쳐내는 가슴 시린 이야기의 틈바구니에서 송강호는 아주 잠깐 등장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영화 속 보스 배태곤(문성근)의 부하로, 우연히 조직에 들어오게 된 막동(한석규)을 괴롭히다가 나중에는 보스를 배신하는 삼류깡패 판수라는 캐릭터였지요.

 

신입 조직원 한석규를 툭하면 불러 세워 담뱃불을 붙이라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너무나 리얼해서 진짜 깡패 같았습니다.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며, “, , 일루와 봐, 임마하는 등의 말투, 또 비릿한 웃음으르 과장하는 표정까지 영락없는 삼류 깡패의 모습이었지요. 오죽하면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로부터 진짜 깡패를 캐스팅한 줄 알았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었겠습니까.

 

초록 물고기의 개봉을 앞두고 주인공인 문성근과 한석규 등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치 입을 맞춘 듯 영화를 보면 아마 깜짝 놀랄 만한 배우를 발견하게 될 것이라며 송강호의 등장에 대해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개봉 후엔 이들의 예고가 틀리지 않았음을 관객들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지요. 이전의 한국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스테레오 타입의 깡패들과는 차별되는 새로운 깡패 캐릭터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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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으로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년, 홍상수 감독)에 단역으로 출연하던 당시의 송강호.

  

송강호에게 초록 물고기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단역 배우를 넘어 웬만한 주-조연배우 못지 않게 주목을 받은 씬 스틸러’(Scene Stealer)의 존재를 극명하게 드러낸 영화였습니다. ‘초록 물고기에서 송강호의 연기를 눈여겨 본 송능한 감독이 바로 자신의 데뷔작인 넘버 3’에서 불사파 보스 조필이라는 제법 비중있는 배역을 맡기게 됐지요. 그리고 넘버 3’의 엄청난 반향으로 인해 송강호라는 배우는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데도 성공하게 된 겁니다.

 

넘버 3’에서도 송강호는 역시 주연이었던 한석규와 최민식에 전혀 꿀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오히려 주연배우들을 능가했다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성격 급한 깡패 조필의 말더듬는 모습의 연기는 한때 청소년들의 성대모사 1순위로 떠올랐을 정도였습니다.

부하들을 모아놓고 헝그리 정신에 대해 일장연설을 하는 과정에서 현정화도 라면만 먹고 육상에서 금메달 땄다고 하자 부하 중 한 명이 현정화 아니고 임춘애입니다, 형님이라고 바로잡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곧바로 그 부하에게 사정없이 린치를 가합니다. 그리고 다시 흥분을 가라앉힌 뒤, 다시 일장연설을 이어갑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에 토, , , 토를 다는 놈은 배, , , 배반형, 배신이야! 내가 하늘을 빨간 색이라고 하면 빨간 색인거야. 알았어?”

경상도 사투리 억양으로 연기했던 이런 장면들은 놀랍게도 대부분 한 번의 테이크(촬영 횟수)로 끝내 송 감독 등 스태프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넘버 3’에서는 그의 이런 능청스러운 연기들이 가득했지요. 중학생 시절부터 연기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키워온 데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기본기를 착실히 쌓아온 연기 내공이 마침내 발현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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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제 38회 대종상 시상식'에서 '공동경비구역 JSA'에서의 열연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함께 영화에 출연했던  이병현(오른쪽)이 무대로 달려나가 축하하고 있다. 

  

1990년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경상대)에 복학하지 않고 부산 극단에서 연극을 하던 중에 그는 지방순회공연 중인 연극 최선생을 보고 서울행을 결심했습니다. 극단 연우무대의 공연작이었던 최선생은 전교조를 다룬 작품인데,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해주는 방식에 공감했던 겁니다. 나중에 극단 연우무대에서 발간한 연우 30에서 그는 “‘극단 연우무대는 내가 지향하던 점을 정확히 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최선생은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집어준 기회이자 새로운 용기와 목표를 가지게 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극단 연우무대의 일원이 되기 까지에는 순탄치 않는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무작정 서울의 연우소극장으로 올라가서 주머니를 털어 당시 공연중이던 한씨 연대기를 보고난 후, 분장실로 찾아가 단원이 되고 싶다고 얘기한 겁니다. 당연히 연우무대 단원들은 그에게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지요. 그래도 송강호는 굴하지 않고 청소든 포스터 붙이는 일이든 뭐든지 시켜달라며 거듭 부탁했습니다.

 

그 후 그는 거의 매주 한 번씩 부산에서 서울 연우무대 사무실로 찾아가기를 반복했습니다. 당시 그의 이러한 열정에 연민을 느낀 연우무대 극장장(류태호)으로부터 할 일이 있으면 연락주겠다는 막연한 약속을 받은 것만으로도 그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물론 그 후에도 연우무대로부터는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그의 연우무대 방문은 주기적으로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열정이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작은 연우무대의 공연무대 철거작업을 돕는 일이었습니다만 누구보다도 열심인 그에게 극단의 선배들이 자연스럽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었습니다. 물론 대부분 단역이었습니다만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습니다. 1991년부터 1996년까지 그는 동승’ ‘박첨지’ ‘날아라 새들아’ ‘국물 있사옵니다’ ‘비언소10여 편의 무대에 섰습니다.

 

초록 물고기에 캐스팅된 건 이창동 감독이 비언소를 보고난 뒤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초록 물고기에 캐스팅되자 이상우 연우무대 대표가 이왕 하는 것, 제대로 해보라면서 연극 공연에서 빼주기까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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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2006년,봉준호 감독) 스틸 컷. 

 

송강호는 넘버3’ 이후 빼어난 연기력으로 한국영화의 르네상스시대를 이끌었습니다. 아울러 레전드급 배우로도 자리매김해왔습니다. 서른살이 넘은 몸으로 레슬링 테크닉을 익히기 위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된 시간을 보내면서 스스로 최선을 다해 후회가 없다고 했던 반칙왕’(2000,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그의 필모그라피에서는 반복적으로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번 밟은 땅은 다시 밟지 않겠다는 듯이, 한번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는 자기복제를 엄격하게 경계하면서 공동경비구역 JSA(2000, 박찬욱 감독), ’YMCA야구단‘(2002, 김현석 감독), ’살인의 추억‘(2003, 봉준호 감독), ’괴물‘(2006, 봉준호 감독), ’밀양‘(2007, 이창동 감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김지운 감독), ’박쥐‘(2009, 박찬욱 감독), ’설국열차‘(2013, 봉준호 감독), ’관상‘(2013, 한재림 감독), ’변호인‘(2013, 양우석 감독), ’사도‘(2015, 이준익 감독), ’밀정‘(2016, 김지운 감독), ’택시운전사‘(2017, 장훈 감독) 등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송강호의 연기 세계를 펼쳐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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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영화'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과 송강호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모습.

  

통계로 본 송강호의 이른바 티켓 파워는 트리플 천만 배우라는 점에서 여실히 증명됩니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출연 영화가 세 편이라는 뜻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던 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가 모두 천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지요. 특히 주연배우로 출연했던 그동안의 누적 관객 수가 1억명이 넘었다는 사실도 놀랍습니다. 2016년의 밀정에서 1억명을 돌파했으니 지금쯤은 11천만명도 넘어선 셈입니다.

 

하지만 그의 티켓 파워는 단순히 연기력만으로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고르는 안목,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흥행성 높을 듯한 영화만을 골라서 출연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뢰를 갖게 하는 영화, 또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길로 들어서는 영화에는 기꺼이 발을 들여놓습니다. 때로는 그것이 남극일기’(2005, 임필성 감독)푸른 소금’(2011, 이현승 감독)처럼 수렁일 때도 있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고 보는 배우송강호가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면 관객 역시 그의 출연 영화를 보고 후회하는 일은 좀체로 생기지 않는 거지요.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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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우아한 세계'(2007년, 한재림 감독) 언론시사회에 참석한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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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년,감독 김지운)의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이상한 놈 윤태구' 역의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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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17회 이천 춘사대상 영화제에서 '박쥐'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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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합법 다운로드 권장 캠페인인 ‘굿 다운로더 캠페인’에 참석한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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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의형제`(2010년, 장훈 감독)의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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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울링’ (2012년, 유하 감독)의 시사회에 참석한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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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스포츠코리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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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상`(2013년, 한재림 감독)의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해 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있는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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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제 8회 올해의 영화상에서 '밀정'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송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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