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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극장]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강수연

기사입력 [2018-01-0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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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만명의 관객동원 기록을 세운 영화 베테랑’(2015, 류승완 감독)에서 주인공 서도철 형사(황정민)가 이런 대사를 날립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류승완 감독이 오래 전부터 자신의 영화에 꼭 한 번 써먹겠다고 가슴에 품어왔다는 대사입니다. 정확한 시점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의 어느 술자리에서 들었던 월드스타 강수연의 건배사였다고 합니다.

필자도 과거의 언젠가 강수연과 함께 자리한 영화인들의 술자리에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배우 강수연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는 워딩으로는 그만입니다. 다섯 살 때부터 카메라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연기를 해온 베테랑 배우 강수연은 자신의 말처럼 평생 가오로 살아왔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연기를 시작해서 40여년 이상을 배우로 살아오는 동안 그녀는 연기 이외의 다른 것에 눈을 돌려 본 적이 없습니다. 배우의 길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여기고 지금까지 묵묵히 걸어왔습니다. 심지어 2011달빛 길어올리기’(임권태 감독) 이후에는 출연작이 없었음에도 그녀 는 여전히 영화배우 강수연의 가오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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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영화 '업'에서의 구산댁 강수연 

 

공식적인 데뷔작으로 알려진 TBC(동양방송) 드라마 똘똘이의 모험’(1971)을 시작으로 하이틴 시절의 인기 TV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나 영화 ’W의 비극(1985, 김수형 감독), 그리고 영화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된 고래사냥2’(1985, 배창호 감독)를 거쳐서 자신을 월드스타로 만들어주게 될 줄 전혀 몰랐던 씨받이’(1987, 임권택 감독)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남들처럼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물론 그 흔한 하이틴로맨스 한번 겪을 새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씨받이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스타로 떠오른 이후에는 수많은 영화사로부터 출연요청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녀를 둘러싼 캐스팅 경쟁은 그야말로 치열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영화라면 웬만하면 출연을 승낙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후반, 그녀는 연간 3~4편의 영화에 겹치기 출연을 밥먹듯 했습니다.

 특히 1987년에는 무려 6편의 영화에 등장했습니다. 10대 철부지 산골처녀가 권세가문에 씨받이로 팔려간 영화 씨받이로부터 요부 장녹수를 연기한 연산군’(1987, 이혁수 감독), 박중훈과 호흡을 맞춰 청춘남녀의 알콩달콩 사랑이야기를 그려낸 철수와 미미의 청춘스케치’(1987, 이규형 감독), 억척스러운 시골 아낙네로 열연한 감자’(1987, 변장호 감독), 거칠게 살아가는 창녀로의 파격변신을 보여준 지금 우리는 제네바로 간다’(1987, 송영수 감독), 숙명과 업보의 도화살 여인네 인생을 펼쳐낸 됴화’(1987, 유지형 감독) 등이 그것입니다.

 

강수연의 외길 배우 인생을 가능케 한 데는 어쩌면 월드스타에 걸맞는 개런티도 한 부분을 차지할 겁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과 모스크바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1989,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연이은 수상 후 그녀의 출연료는 당연하다는 듯이 급상승했습니다. 당시 한국영화의 여주인공 개런티는 대략 5백만원 정도였는데, 그녀를 캐스팅하려는 영화제작사들 간의 경쟁으로 연산군’ ‘우리는 제네바로 간다’ ‘감자등에서는 1천만원~15백만원 정도를 받았고, 그 후에는 편 당 3천만원 이상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영화 의 경우에는 당시 제작사(태흥영화)업을 포함한 3편의 영화 출연을 조건으로 1억원에 계약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편당 35백만원 수준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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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영화 '아제 아제 바라아제'의 순녀역으로 삭발하는 강수연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녀는 겹치기 출연으로 자신을 소모시키는 걸 더 이상 계속하지 않기로 결심합니다. 다행히 당시엔 한국 영화에 새로운 물결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른바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 장선우 박광수 장길수 곽지균 이명세 이현승 감독 등과 영화를 찍으며 완숙미의 아우라를 발산했습니다. ‘경마장 가는 길’(1991)을 비롯해 베를린 리포트’(1991),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웨스턴 애비뉴’(1993) ‘그대 안의 블루’(1992) ‘지독한 사랑’(1996) ‘깊은 슬픔’(1997) 등에서 그녀는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관객과 만났습니다.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던 1980년대와는 달리 그녀는 국내의 여러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평소 소신처럼 배우로서의 가오를 지켰기에 그녀는 오로지 극장에서만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방송사에서 숱하게 출연을 요청했지만 언제나 가오를 앞세워 점잖게 고사했지요. ‘고교생 일기이후 거의 20년 동안 그녀는 영화에만 출연했습니다.

 

그녀가 처음으로 TV드라마에 출연한 게 2001년이었습니다. SBS TV드라마 여인천하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당시 방송사에서는 그녀의 첫 ‘TV 외도를 대대적으로 앞세우며 마케팅에 열을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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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서 서윤주역의 강수연 

 

1990년대 한국 영화계에서 강수연의 독점적 우월 지위를 가능케 한 또 다른 측면은 80년대 후반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한 한국영화 여배우 트로이카 체제의 쇠퇴에 따른 상대적 현상이기도 합니다. 2세대 트로이카 정윤희 장미희 유지인중에서는 장미희가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었고, 3세대 트로이카로 일컬어지던 이미숙 원미경 이보희는 결혼 등의 이유로 하나둘씩 스크린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특히 뚜렷한 경쟁 여배우가 없던 상황에서 후배들인 김여진 진희경과 함께 미혼여성들의 솔직한 성담론을 펼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임상수 감독)는 강수연을 위한 영화 같았습니다. 김여진과 진희경도 열연했습니다만 강수연이 없었다면 처녀들의 저녁식사는 아마 크게 성공하지 못했을 겁니다. 영화 속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등장하는 강수연은 처음 본 남자들과 거리낌없이 섹스에 탐닉하면서 성에 관한 기존의 통념을 깨고 스스로 성을 즐기거나 성의 대상을 선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영화를 본 많은 여성들로부터 강수연은 공감의 박수를 받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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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경마장 가는 길'에서 J역의 강수연

 

강수연의 가오 인생은 이른바 잠시도 쉴 틈 없었던 1980년대 1990년대보다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 출연이 현저하게 줄어든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전성기 시절에 비해 현실적으로 녹녹치 않은 생활이었을 텐데, 그녀는 영화계 바깥으로 눈길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경력과 경험치를 앞세워 한국 영화계에서 필요한 자신의 역할을 마땅히 감당해왔습니다. 1998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해온 것이나 2014년의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의 상영중단 압력 사태를 빚으며 부산국제영화제가 표류하게 되자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던 것 등이 바로 그러한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가오인생은 그래서 영화인총연합회로부터 자랑스러운 영화인상’(2010), 또 여성영화인모임으로부터는 올해의 여성영화인상’(2016)을 수상하게도 했습니다.

 

 강수연의 외길 배우 인생은 그녀를 미혼으로 지내게도 했습니다. 예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결혼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거예요. 도도해 보인다면서 남자들이 접근해오질 않아요. 한 마디로 남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거지요. 저도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되질 않네요라고 심경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글쎄요, 남자에게 인기 없다는 그녀의 말이 잘 믿어지진 않습니다.

 

하기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인생을 다양한 캐릭터로 살아냈으니 범부(凡婦)의 삶이 호락호락 그녀 앞에 펼쳐지기는 어려울 듯 싶기도 합니다. 그저 그녀의 바람대로, 70대가 되어서는 집으로’(2002, 이정향 감독)의 할머니 역할과도 같은 평생 배우의 모습으로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할 뿐입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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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스포츠코리아와의 인터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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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인터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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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 정난정 역의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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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주말드라마 '문희' 제작발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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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삼성 PAVV 프로야구` 롯데와 삼성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시구하는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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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지(韓紙)에 얽힌 스토리를 다룬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임권택 감독) 제작발표회의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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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 31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에 참석한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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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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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한 강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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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스포츠코리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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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동집행위원장 강수연이 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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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신성일이 14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비프빌리지 2017 부산 국제 영화제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핸드 프린트 행사에 참석해 강수연 위원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