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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불의 나라`

기사입력 [2017-11-0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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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의 나라’(1989, 장길수 감독)8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 박범신의 신문 연재소설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입니다. 요즘엔 신문에서 연재소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지만 그 시절에는 신문 연재소설이 독자들의 열독율을 끌어올리는 견인차 노릇을 톡톡히 했습니다. ‘불의 나라역시 동아일보에서 864월부터 16개월간 인기리에 연재됐던 소설입니다. 가장 큰 경제호황을 누렸다는 80년대 이후 한국 사회의 단면을 조명하면서 그중에서도 욕망의 도시 서울이 이른바 서울 공화국으로 변해가는 방식과 그 과정을, 서울로 상경한 시골 청년의 눈을 통해 그려낸 세태풍자소설이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도덕적 자부심 밖에 없는 촌놈 백찬규가 상경해서 맞닥뜨리게 되는 잘 나가는 사람들과의 좌충우돌 사건들을 통해 그들의 위선과 허상의 가면을 순수의 힘으로 벗겨내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암울한 사회에서 제대로 된 소리 한번 내지 못했던 서민들로서는 기득권층을 향해 시원하고 바른 소리를 외치는 백찬규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문에 연재되던 당시 많은 독자들이 내일을 기다렸습니다. ‘불의 나라의 다음 회가 궁금했기 때문이죠. 백찬규의 활약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기대하는 독자들은 연재내내 긴장과 흥미를 갖고 읽었습니다. 당시 사회에 대한 풍자와 야유가 백찬규의 독설과 걸쭉한 욕설로 표현되는 것에 독자들은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간다며 반겼습니다. 심지어 열성 독자들은 신문사에 편지를 보내 백찬규를 한가락 하게 해라거나 여주인공(은하)과 맺어지게 하라는 등의 압력(?)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박범신 작가는 신문연재를 마치면서 독자들의 호응이 연재를 이끌어간 동력이었는데, 역설적으로 그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썩었다는 반증이라면서 그래서 더더욱 백찬규의 도덕적 순결성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습니다. ‘불의 나라의 주인공 백찬규의 올곧은 시골 청년 캐릭터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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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을 위해 서울에 올라온 백찬규(이덕화)는 좌충우돌하면서 욕망의 도시 서울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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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 은하(장미희)는 향락적인 룸살롱 마담으로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불의 나라의 영화화는 이문열의 원작소설 레태의 연가’(1987)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를 영화로 만들었던 장길수 감독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주인공 백찬규 역에는 이덕화가 캐스팅됐습니다. 당시 이덕화는 많은 영화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영화 접시꽃 당신’(1988, 박철수 감독)에서의 열연과 흥행성공으로 아주 한 시절이었습니다. 그전까지 진짜 진짜 미안해’(1976, 문여송 감독) 등의 하이틴 영화로 인해 굳어졌던 하이틴 스타의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내고, 충무로 영화가에 새로운 주연남우로 부각되면서 불의 나라의 백찬규 역까지 꿰찰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덕화는 TV의 어느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이 터프가이의 이미지를 갖기 시작한 것은 MBC TV드라마 사랑과 야망’(1987)의 박태수 역을 맡게 되면서부터였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사랑과 야망의 김수현 작가가 유흥업소 출연으로 동분서주하던 자신에게 젊은 놈이 돈에 눈이 벌개가지고 다니는데 누가 배역을 주냐? 가발이라도 써라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는 겁니다. 탈모증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이덕화는 이때 즉시 가발 쓰고 김수현 작가에게 찾아가 박태수 역할을 얻게 됐다는 얘깁니다. 그러니까 이덕화의 상남자변신 은 TV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시작해 영화 접시꽃 당신으로 화룡점정된 셈이었던 겁니다.

여주인공으로는 장미희가 나섰습니다. 장미희 역시 배창호 감독과 만나 적도의 꽃’(1984) ‘깊고 푸른 밤’(1986) ‘황진이’(1987) 등의 영화에서 카리스마 넘친 연기로 여배우 트로이카’(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중에서 압도적 독주를 펼칠 때였습니다. 이덕화 장미희 주연, 그리고 장길수 감독 연출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영화는 절반쯤 성공한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에다 불의 나라의 원작 또한 박범신 작가의 인기연재소설이었으니 독자들의 기대는 또 얼마나 컸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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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흥청거리는 룸살롱의 모습을 풍자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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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나라'에서는 여주인공 은하의 룸살롱 장면이 유난히 많이 등장한다.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이 룸살롱에서 흥청거리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촬영이다. 

 

영화에서도 백찬규는 걸쭉한 호남 사투리로 서울 공화국을 온통 헤집고 다닙니다. 취직을 위해 상경한 찬규는 부와 권력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름다운 은하(장미희)를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향락적인 룸살롱의 마담인 은하는 첫사랑 민호(한지일)에 대한 배신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순수한 찬규로부터 위로를 얻습니다. 은하의 권유로 그녀와 동거하게 된 찬규는 고향친구 길수(정승호)의 도움으로 카세트 행상을 하면서 열심히 살지만 무능하다는 이유로 은하로부터 냉대를 받습니다. 은하의 태도 변화와 추악한 서울의 참모습을 발견한 찬규는 허상에 가득찬 자신을 발견하고 은하와 결별합니다. 그러나 사기죄에 휘말린 은하가 찬규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자 찬규는 지친 은하와 함께 시골로 내려와 새로운 삶을 꾸리고자 합니다. 그러나 시골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은하는 결국 서울에 대한 미련과 욕망을 거두지 못한 채 서울로 되돌아 갑니다. 그리고 홀연히 떠나버린 은하를 찾아 헤매는 찬규의 절규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이덕화는 주인공 백찬규의 캐릭터를 감칠맛 나게 그려냈습니다. 특히 그가 구사하는 호남 사투리의 대사들은 토박이 수준에는 못미쳤지만 꽤 매력적으로 어필했습니다. 특히 권력과 부와 명예를 가진 자들을 상대로 걸쭉하게 외치는 사설과 함께 천둥벌거숭이 같은 몸짓들은 관객들에게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습니다. 훗날 영화 황산벌’(2003, 이준익 감독)에서도 자주 사용되었던 대사 거시기'가 찬규의 입을 통해서 유쾌한 의미를 던져준 점도 흥미롭습니다. 당시 박범신 작가는 이를 거시기 문화라고도 불렀지요.

불의 나라는 또한 국내 문화예술계에서 원쏘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하나의 컨텐츠를 서로 다른 장르에 적용하여 새로운 컨텐츠를 가공생산하는 마케팅 기법)의 원조와도 같은 작품입니다. 신문연재소설로 시작되어 단행본 출간, 영화제작에 이어 MBC라디오드라마 소설극장과 그룹 사랑과 평화에 의해 음반으로도 출시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당극을 원용한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무대에 올려졌으며, 영화 개봉(1989829) 이후에는 KBS TV드라마로도 만들어져 안방극장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박범신 작가의 신문연재소설이 무려 7개의 장르에서 저마다 새로운 컨텐츠로 만들어진 셈입니다.

박범신 작가는 불의 나라에 이어 속편 물의 나라도 계속 동아일보에서 연재했습니다. 그리고 물의 나라역시 영화(1990, 유영진 감독)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불의 나라의 주인공 백찬규의 고향친구 한길수(정승호)가 주인공으로 나오지요. 정승호는 불의 나라에서도 조연으로 등장했습니다. 다만 물의 나라의 여주인공은 송혜란이라는 새로운 인물로, 당시 콜라 같은 이미지로 부상하기 시작한 모델 출신의 여배우 심혜진이 맡았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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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의 룸살롱에 들어가 술판을 엎어버리다가 종업원들에게 몰매를 맞으며 제압당하는 찬규(이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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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장미희)의 태도 변화와 서울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은하와 헤어지려고 했던 찬규(이덕화). 그러나 사기죄에 휘말린 은하가 찬규의 자취방으로 찾아와 도움을 청하자 찬규는 은하를 다시 감싸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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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지만 찬규의 자취방에서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은하(장미희)와 찬규(이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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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은하(장미희)는 서울에 대한 미련과 욕망을 버리지 못한 채 다시 찬규(이덕화)를 떠나 서울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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