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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세의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땅 끝에 선 연인`

기사입력 [2017-10-12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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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을 빚어놓은 듯한 미남의 얼굴형에 훤칠한 키와 탄탄한 몸매 등으로 여성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임성민이라는 배우를 기억하시는지요? 1980년대 군사독재정권의 이른바 3S 정책(국민들의 관심사를 Screen<영화>, Sports<스포츠>, Sex<> 등 정치와 동떨어진 데로 돌리기 위해 쓰는 우민화 정책)에 맞춰 유행처럼 제작되었던 에로티시즘 영화들의 간판스타로 군림했고, 또 안방극장에서는 준수한 외모를 앞세워 사랑과 성공을 쟁취하는 남자주인공으로 사랑받았던 배우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고작 10여 년 정도 연기활동을 펼치다가 1995년에 서른아홉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스타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40~50대의 독자들이라면 무릎과 무릎사이’(1984, 이장호 감독)바람난 도시’(1984, 김양득 감독), ‘장사의 꿈’(1985, 신승수 감독), ‘색깔있는 남자’(1985, 김성수 감독), ‘됴화’(1986, 유지형 감독), ‘애란’(1989, 이황림 감독) 등의 영화들을 어렴풋하게나마 기억할 것입니다.이같은 영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한결같이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영화들이었는데, 고 임성민은 이들 영화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낸 배우였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한국영화에서는 60~70년대를 풍미했던 신성일 이후에는 이렇다할 미남의 대명사격 주인공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적 배경과 맞물린 3S 정책에 의한 에로티시즘 영화들의 양산이 임성민이라는 이름 석자와 함께 미남배우의 대명사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됐던 겁니다. 연기 입문 역시 그의 하드웨어가 단단히 한몫 했습니다. 181cm의 키에 육상선수 출신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매, 게다가 수려한 이목구미의 얼굴은 한눈에 그를 범상치 않은 재목으로 보이게 했지요. 건국대 체육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8, 그의 하드웨어를 탐낸 영화관계자의 추천으로 영화 마지막 잎새’(이성구 감독)에 잠깐 출연했던 것이 결국은 대학을 중퇴하고 연기자의 길에 들어서게 했으니까요. 위에서도 잠깐 그가 출연한 에로티시즘 영화들을 언급했습니다만 1980년대 후반까지 그의 필모그라피는 온통 빨간색(흔히 에로티시즘 영화를 색깔로 이렇게 표현합니다)’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 그의 활약(?)은 종횡무진, 그야말로 스크린과 안방극장은 물론 CF모델과 온갖 팬 사인회 등으로 살인적인 스케줄의 연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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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선 연인'의 여주인공 채원 역으로 등장해 재만 역의 고 임성민과 멜로연기를 펼친 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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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알래스카에서 다시 만난 첫사랑 재만(고 임성민)과의 재회에 갈등하는 채원(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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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최수지)는 고교시절 선생이었던 재만(고 임성민)을 사랑하여 '사제지간'으로서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어선 뒤, 방황 끝에 알래스카까지 흘러들게 된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땅 끝에 선 연인’(1992, 이석기 감독)은 고 임성민의 1980년대 필모그라피와는 노선을 달리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시도하는 알래스카 올로케이션 촬영으로, 당시에 큰 화제를 낳았습니다. 매스컴에서도 알래스카 로케이션을 비중있는 기사로 다루었을 정도입니다. 또 이처럼 큰 규모의 영화에서 담아낼 이야기가 알래스카의 눈부신 설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남녀의 애절한 러브스토리라는 점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보통의 멜로영화는 남녀 주인공 캐스팅해서 한달이면 후딱찍을 수 있는 장르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러브스토리를, 머나먼 알래스카까지 날아가 추운 날씨 등 척박한 환경을 무릅쓰고 찍어오겠다고 하니 영화계 안팎에서는 우려하는 시선이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고 임성민은 땅 끝에 선 연인의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이 영화에 출연할 당시 그는 끊임없이 들어오는 에로티시즘 영화 출연요청 등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스케줄에 몹시 지쳐있던 때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는 해외로케이션 영화에의 출연을 피난처, 한편으로는 재충전의 시간으로 선택한 겁니다. ‘땅 끝에 선 연인의 출연에 앞서서도 이미 일본 로케이션으로 촬영된 사의 찬미’(1991년,김호선 감독)에도 같은 이유로 출연했습니다. 더군다나 땅 끝에 선 연인은 현지답사와 촬영기간을 합쳐 거의 석 달 가까이 소요됐으니까, 촬영을 핑계로 충분히 쉴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물론 휴식의 이유 외에도 1980년대를 지나오면서 자신에게 덧씌어진 에로티시즘의 주인공, 혹은 섹시스타라는 이미지에서의 탈피 혹은 변신을 꾀하려는 배우로서의 목적도 있었지요. ‘사의 찬미의 상대 여주인공이 장미희였다는 점이나 땅 끝에 선 연인의 상대 여주인공이 최수지라는 점이 그러한 그의 의도를 짐작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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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채원(최수지)과 재만(고 임성민). 채원에게는 이미 남편(토니 그랜트)이 있지만 두 사람은 다시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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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재만(고 임성민, 오른쪽)을 사랑하는 고교시절의 채원(최수지).

   

첫사랑에 실패한 후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던 재만(임성민)은 친구의 도움으로 알래스카에서 일자리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첫사랑인 채원(최수지)을 만나게 됩니다. 채원과 사제지간이었던 재만. 사랑한다며 쫓아다니던 제자 채원에게 자신도 점차 사랑을 느끼게 되고, 결국 넘어서는 안될 을 넘어섰다는 자책감으로 학교를 그만두었던 과거를 떠올립니다. 채원 역시 못이룬 첫사랑을 방황하다가 알래스카까지 오게 된 것이었죠.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지구의 정 반대쪽에서 만난 두 사람은 다시 운명적인 사랑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채원에게는 이미 남편 눌라툭(토니 그랜트)이 있습니다. 그는 미군병사에게 버림받는 등 우여곡절의 삶을 이어오던 채원을 구해준 에스키모 인디언입니다. 채원은 남편 때문에 잠시 갈등하지만 재만과의 재회에 더욱 빠져듭니다. 재만과 함께 밀월여행을 떠나기도 하는데, 두 사람을 찾아온 눌라툭에 의해 채원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홀로 남은 재만은 알래스카의 겨울사냥 시즌 속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다시 채원에게 찾아옵니다. 눌라툭은 재만에게 그냥 채원의 친구로만 남아줄 것을 당부하는데, 재만은 이를 거절합니다. 재만과 채원의 애절한 사랑과 더불어 눌라툭의 헌신적인 사랑까지 엉키면서 세 사람의 갈등은 고조됩니다. 이 와중에서 우울증을 앓던 채원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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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선 연인'에서 잠깐 과거 장면으로 보여지게 되는 재만(고 임성민, 왼쪽)과 채원의 사제지간 시절 촬영장면.

 

대략의 내용에서 보듯 영화는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며 대작의 틀을 갖췄습니다만 내러티브(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 또는 행위를 뜻하는 영화용어)에서는 다소 실패했습니다.원작(이사림 작가의 동명소설)을 거의 그대로 옮겨오기는 했는데, 알래스카의 해외 로케이션이라는 부담 때문이었는지 거대한 알래스카의 풍광을 담아내느라 정작 주인공 남녀의 애절한 사랑은 밋밋하게 그려지고 말았습니다. 허술한 멜로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지요. 무엇보다도 이석기 감독이 베테랑 촬영감독 출신의 감독으로 이미 집시 애마’(1990)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1991) 등 감각적인 영화를 만들어낸 연출솜씨를 선보였던 터라 그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임성민이라는 당대 최고의 미남배우와 역시 KBS TV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토지’,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강우석 감독)상처’(1989, 곽지균 감독) 등을 통해 전성기를 구가하던 최수지가 남녀 주인공이었다는 점에서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이 영화에는 특히 아카데미상 수상작인 늑대와 춤을’(1991, 케빈 코스트너 감독)에 출연했던 미국배우 토니 그랜트까지 최수지의 남편 눌라툭으로 출연하는 등 여러 요인들이 마치 흥행성공의 보증수표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19925, ‘가정의 달 특선 영화로 국내에서 가장 큰 대한극장에서 개봉된 흥행결과는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하고 3주만에 극장 간판을 내려야 했습니다.

고 임성민은 해외 로케이션 영화의 촬영을 휴식의 시간으로 생각했지만, 결코 그 시간들이 그에게 휴식을 가져다 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너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체력이 바닥나 절대안정을 필요로 한다는 병원측의 경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땅 끝에 선 연인이 끝난 후에 TV드라마 행복의 조건’ (1993, SBS)폭풍의 계절’(1993, MBC)에 연이어 출연했고, 영화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1994, 장길수 감독)에도 출연했습니다. 결국은 그 다음해 영화 애니깽’(김호선 감독)의 멕시코 촬영 중 쓰러져 들것에 실려 귀국한 후,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의 나이 서른 아홉의 일이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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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선 연인'의 국내 촬영현장. 고 임성민은 워낙 인자한 품성으로 스태프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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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에 선 연인'의 이석기 감독(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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