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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기사입력 [2017-10-12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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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여름방학 시즌, 극장가에 흥행돌풍을 몰고왔던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 감독)는 영화관계자들로 하여금 하이틴 영화의 기획과 제작에 눈을 돌리게 했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제작사인 황기성사단()이 곧바로 속편의 기획 제작에 돌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있잖아요 비밀이에요’(1990, 조금환 감독)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1990, 황규덕 감독), 그리고 영심이’(1990년 이미례 감독) 등이 잇달아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70년대에 유행했던 하이틴 영화가 당시 유신독재시대의 가혹한 검열을 피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제작되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배경과 목적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의 비정상적인 교육 현실을 배경으로 입시지옥에 내몰린 청소년들의 고민과 좌절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청소년 관객층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전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속편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기대 이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예정에 없던 속편을 제작하게 됐던 터라 사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전편에 비해 준비 부족의 문제점을 안고 출발했습니다. 전편의 감독이었던 강우석 감독이 속편의 연출을 맡아주면 좋았겠지만, 강 감독에게는 이미 다른 영화가 맡겨진 뒤였습니다. 제작사(황기성 사단) 역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흥행성공으로 속편을 제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강 감독에게는 일찌감치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비판하는 영화 날마다 일어선다’(1990)의 연출이 맡겨져 있었습니다. 결국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속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전편의 시나리오를 썼던 작가 김성홍에게 맡겨졌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성홍 감독이 비록 데뷔작이기는 하지만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으로 오래전부터 감독준비를 착실히 해왔다는 점이었습니다. 강우석 감독과 함께 달콤한 신부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현장 연출의 감각도 익혀왔던 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편과 마찬가지로 대학입시라는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치열한 성적 경쟁에 내몰린 고등학교 교육현장의 현실을 담아내는 것이어서 김성홍 감독으로서는 한결 수월하게 현장을 지휘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다 김성홍 감독의 장기가 뛰어난 유머감각이라는 점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순탄한 제작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전편의 흥행 성공으로 캐스팅 또한 어렵지 않게 라인업을 꾸릴 수 있었습니다. 전편 흥행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이미연과 허석(지금의 김보성)당연직 캐스팅되었고, 상큼하고 풋풋한 이미지를 지닌 전미선과 고 최진영 등 하이틴 배우들을 주요 배역으로 기용할 수 있었습니다. 전편 촬영때 고등학생이었던 이미연이 속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촬영에서는 어엿한 대학생(동국대 연극영화과 1학년)의 신분으로 현장을 지키며, 전편보다 훨씬 성숙한(?) 여고생 캐릭터를 표출해냈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허석은 전편을 찍을 때도 이미 스물넷의 나이로 고등학생 역을 연기했는데, 1년이 지난 후의 속편에서도 여전히 철없는 고등학생의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그려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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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 이어 속편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서도 여주인공(혜주)으로 출연한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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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네 주인공들. 왼쪽부터 전미선, 허석(김보성),최진영,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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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2학년5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은경(전미선,왼쪽)과 역시 공부 잘하는 혜주(이미연)을 남몰래 좋아하는 태호(최진영).오른쪽 멀리 포커스 아웃된 이범수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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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를 촬영할 당시에는 이미연도 대학생(동국대 연극영화과 1학년)이었고, 허석(김보성)도 스물다섯의 나이로 고등학생 연기를 능청스럽게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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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체육시간을 촬영 중인 은경(이미연, 왼쪽)과 허석(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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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촬영은 여름방학 내내 진행됐다. 체육시간 촬영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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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촬영 도중 망중한을 즐기는 네 주인공.  이미연(왼쪽)과  고 최진영(왼쪽에서 두번째)의 유난히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 2학년 5, 혜주(이미연)와 은경(전미선)은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성적에 대한 과도한 부모님의 기대에 시달리는 내성적인 성격의 태호(최진영)는 공부 잘하는 혜주를 남몰래 좋아합니다. 기말고사가 닥치자 혜주와 은경은 서로 1등을 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데, 몸이 아파서 제대로 공부하지 못한 혜주는 시험시간에 커닝을 시도하기까지 합니다. 혜주의 커닝하는 모습을 목격한 은경은 충격을 받습니다. 커닝한 혜주는 혜주대로 자책감에 빠집니다.

 

한편 첫날 기말시험을 망친 태호는 밤 늦게 학교의 시험지 등사실로 숨어들어갑니다. 그리고 시험문제지를 간신히 손에 넣게 된 순간, 선생에게 들키게 되자 얼떨결에 창 밖으로 몸을 날립니다.

이튿날 학교에는 태호의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지고, 입원한 태호가 자기를 찾는다는 말을 전해들은 혜주는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이미 태호는 숨진 뒤였습니다. 혜주와 반 친구들은 태호의 죽음에 울음을 터뜨립니다. 태호의 죽음을 계기로 화해한 혜주와 은경은 학교 현관에 붙어있는 기말고사 성적표를 향해 달려가 동시에 찢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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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촬영장면. 반에서 1,2등을 다투는 혜주와 은경의 신경전은 교실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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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는 신인배우들의 데뷔가 많았다. 왼쪽부터 허석(김보성), 김보라나, 최진영, 공형진, 이미연.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서도 주요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태호(최진영)의 죽음이 다뤄지긴 했지만 전편에서처럼 성적에 대한 비관으로 빚어진 여주인공의 극단적인 선택(자살)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문제를 자신들이 해결하려는-- 교실 현관에 붙었는 성적표를 찢어버리는-- 적극적인 의지를 드러내보였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태호 역에 어찌하여 고 최진영이 맡게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첫 주연을 맡아 청룡영화상(신인연기상)을 수상한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1991, 정지영 감독)에 앞서 조연으로 출연한 이 영화가 사실상 고 최진영의 영화데뷔작입니다. 데뷔영화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는 역할을 연기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졌겠지만 훗날,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비극적인 운명으로 귀결된 것과는 정말이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을까요.

 

하이틴 영화의 바람을 몰고 온 영화답게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는 주요 배역들 외에도 풋풋한 신인배우들의 면면에 시선이 갑니다. 혜주(이미연), 은경(전미선), 태호(최진영)의 반 친구들로 이범수, 공형진 등이 출연했습니다. 김성홍 감독의 대학(중앙대 연극영화과) 후배들인 이들은 지금이야 모두 나름대로 한 가닥하는 배우들로 활동하고 있습니다만 당시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이들 모두 영화계의 될 성 부른 떡잎이었던 겁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 출연할 때의 이들 나이 역시 이미연 전미연 등과 비슷한 또래였으니까요.

 

그래서였을까요.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한 누나(최진실)의 뒤를 따라 똑같이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고 최진영의 죽음 소식이 전해진 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촬영현장에서 함께 울고 웃었던 이들은 유난히 가슴아파했습니다. 특히 김보성(허석)은 장례식 내내 빈소를 지켰으며 발인 때는 운구행렬을 이끌고 경기도 가평의 추모공원(갑산공원)까지 동행하면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눈물로 배웅했습니다.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에서 서로 책가방을 집어던지며 싸우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절친이 되었다는 이미연과 전미선도 믿을 수 없는 비보에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니 희망을 품자는 뜻의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영화제목마저도 웬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1990914일에 개봉된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는 기대에 못미치는 흥행성적을 남겼습니다. 전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와는 달리 비록 입시지옥에 찌들고 학교와 사회의 편견에 억눌리면서도 발랄한 생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밝은 터치로 그려냈습니다만 오히려 청소년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한 겁니다. 아이러니 같습니다만 아마도 당시의 청소년 관객들은 자신들의 실제 모습과는 동떨어진,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받아들였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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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미연은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촬영현장에서도 최고 스타의 대접을 받았다. 감독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감히 촬영감독의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볼 수 없던 시절인데, 카메라 뷰파인더를 들여다보는 이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