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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세의 비하인드 무비 스토리]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기사입력 [2017-09-06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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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한국영화계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톱스타의 인기'에 기대어 영화를 만들어오던 이전과는 달리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관객의 기호와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 하는 점에 목표를 둔 영화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기획영화인데, 그 첫번째 영화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강우석 감독)였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한 줄의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진 어느 여고생의 비극적인 사건(1986)을 영화 모티프로 삼아 500여명의 청소년들을 16개월 동안 인터뷰하면서 입시지옥으로 내몰린 그들의 실상과 고민이 무엇인지, 나아가 입시 위주의 교육풍토에 경종을 울릴 만한 이야기로 시나리오를 만들어낸 겁니다.

 

톱스타의 캐스팅에도 그다지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TV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인기를 얻어 '한국의 브룩 실즈'로 불리던 최수지가 양호 선생님(조연)으로 나왔을 뿐, 초콜릿 CF로 얼굴이 알려진 이미연 외에는 허석(지금의 김보성), 김민종, 최수훈 등 남자주인공들은 모두 처음 스크린에 얼굴을 비치는 새내기들이었습니다.

 

기획자였던 신씨네 신철 대표로부터 영화의 기획의도를 전해들은 강우석 감독은 일사천리로 콘티를 써내려갔습니다. 당시 강 감독은 농촌 총각들의 결혼문제를 다룬 연출데뷔작 '달콤한 신부들'을 막 끝낸 직후로 '빠르게 찍는 신인감독'이라는 평판을 얻었을 때였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역시 14회 촬영, 1회 보충촬영으로 모든 촬영을 끝냈습니다. 당시 한국영화의 평균 촬영회수는 30회 정도였으니까, 어느 정도로 빨리 촬영을 끝냈는지 눈치 챌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이 영화는 몇 차례의 시사회를 갖고 나서는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작으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호암아트홀(서울 서소문 중앙일보사옥에 있는데, 당시에는 영화상영관으로 운영 중이었습니다) 시사회에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음에도 강우석 감독 특유의 유머감각이 영화를 시종 유쾌한 웃음으로 끌어갔습니다. 그러다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한 줄의 유서를 남긴 채 자살한 여주인공(이미연)의 주검을 실은 운구차가 영화주제가(김창완의 '안녕')를 배경으로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아나가는 마지막 장면에 이르자 극장 안은 온통 울음바다로 변해버렸습니다. 청소년 관객들에게는 또래의 배우들이 펼쳐내는 연기가, 또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상황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나더, 당시 어느 신문에는 "펑펑 울어버린 시사회"라는 영화 칼럼이 게재되어 눈길을 끌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영화계의 관계자들, 특히 개봉영화를 결정하는 극장관계자들은 이 영화의 흥행에 대해서 별다른 기대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개봉극장 또한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 명보 대한 스카라 국도 중앙 등 서울시내의 번듯한 극장이 아닌 청계천 세운상가에 있는 아세아극장으로 일찌감치 확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그 당시 아세아극장은 홍콩영화나 B급 액션외화들을 주로 개봉하는 극장이었습니다비록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시사회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확정된 개봉극장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의 영화상영 시스템이 요즘의 와이드 릴리즈 방식과는 달리 단관 개봉(지역별로 한 극장에서만 상영) 시스템이었던 터라 더더욱 어쩔 수가 없었던 겁니다.

 

마침내 1989년 한여름(7월 29일)에 아세아극장에서 영화가 개봉됐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 관계자들의 예상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제목처럼 '흥행은 배우순이 아니잖아요'를 실증해보였다고나 할까요,청계천 세운상가 일대는 여름방학 내내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덩달아 아세아 극장 앞의 오징어 땅콩 파는 노점상들도 신이 났습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입시위주의 교육풍토를 비판하는 '사회성 소재의 영화'인데, 이 영화를 보러온 청소년 관객들에게 세운상가 노점상(당시 세운상가 노점상에서는 플레이보이 펜트하우스 등의 성인잡지를 파는 곳이 많았습니다)에 눈을 뜨게 했다는 우스개소리도 나왔습니다.

 

결국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아세아극장에서 1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해 한국영화 흥행랭킹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을 지금의 상황으로 정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당시 극장의 흥행지표로는 10만명의 관객동원 기록이면 대박수준으로 평가했습니다. 시쳇말로 '영화 한 편으로 팔자 고치는 케이스'에 해당했습니다. 실제로 그 해에는 '인디아나 존스- 최후의 성전''마지막 황제'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영화가 30~40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습니다. 이 기록과 견주어보면 아세아극장에서의 흥행바람이 얼마나 대단했던가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영화 한 편으로 이미연, 허석, 김민종, 최수훈 등 새내기 배우들은 단박에 인기배우의 대열에 합류했다는 점입니다. 이미연은 차세대 톱스타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허석, 김민종, 최수훈도 밀려드는 출연요청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됐습니다. 이중에서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제작사(황기성사단)에서 온갖 잡일과 청소 등을 하면서 배우지망생을 꿈꾸고 있던 허석의 경우에는강우석 감독의 눈에 띄어 '인생역전'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죠.오늘날의 '으리 김보성'의 발판이 이때 만들어진 셈입니다.영화 속에서 반항아의 이미지를 강렬하게 발산했던 김민종이나 영화 감독 지망생으로 열연했던 최수훈도 이후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으며 확실한 연기자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조연이었지만 양호선생님의 최수지 역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성공 이후, TV'토지'의 여주인공(서희) 오디션에서 15001의 경쟁을 뚫고 주연을 꿰차면서 국민여배우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이창세 영화기획 프로듀서/news@isports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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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 선생님으로 나오는 최수지는 당시 TV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며 한국의 '브룩 실즈'로 불리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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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의 선생님들(왼쪽부터 양호 선생님 최수지, 체육 선생님 이덕화, 담임 선생님 최주봉, 교장 선생님 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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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호선생 최수지를 흠모하는 체육 선생 이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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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샛별스타 이미연과 이국적인 미모로 매력을 발산하며 인기를 구가한 최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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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엔 관심없고 오로지 여주인공(이미연)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남자주인공 허석(왼쪽)과 역시 공부엔 관심없고 양호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학생 최수훈(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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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 시범을 신명나게 해보이는 체육선생님 이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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꾀병으로 양호실을 찾아온 학생 최수훈. 강우석 감독의 자전적 캐릭터라고 하여 화제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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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선생님 최주봉의 조회 장면을 촬영중인 교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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